지난해 8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한 이후 지난달까지 은행으로 흘러간 가계의 뭉칫돈이 3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70조원을 넘었던 투자자 예탁금은 이 기간 10% 넘게 줄어든 반면 머니마켓펀드(MMF)를 중심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국내 펀드는 40조원 늘었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예고된 데다 주식시장까지 얼어붙으면서 갈 곳을 잃은 자금이 ‘안전한 피난처’로 이동하는 ‘역(逆)머니 무브’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 4월 말 기준 가계 요구불예금 잔액(법인 제외)은 326조9114억원으로 집계됐다. 한은이 작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네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연 1.5%로 올린 뒤 가계의 요구불예금은 14조7316억원(4.7%) 늘어났다. 요구불예금은 언제든지 은행에서 찾을 수 있는 초단기 예금으로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통한다.

지난달 5대 은행의 가계 정기예금 잔액도 작년 8월(252조5010억원)보다 22조2145억원(8.8%) 증가한 274조7155억원으로 나타났다. 적금 등 적립식 예금 잔액 역시 같은 기간 3523억원 늘어난 35조1800억원으로, 1년1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이 기간 가계가 은행에 추가로 맡긴 요구불예금, 정기예금, 적금을 합하면 37조3000억원에 이른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5%에 육박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감안할 때 연 2%에 불과한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매력적인 수준은 아니다”면서도 “주식과 암호화폐 등 다른 투자처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고 있는 만큼 예·적금 등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본시장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 증권사에 맡긴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은 올해 1월(70조3447억원) 사상 최대를 찍은 뒤 지난달 61조4062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작년 말 135조원이던 MMF는 이달 들어 174조원으로 불어났다. MMF는 국공채, 기업어음, 양도성예금증서 등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펀드로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힌다

이인혁/조미현/박상용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