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대표적 장기 미제 사건 중 하나인 '변호사 피살사건' 항소심이 시작된 가운데 검찰이 "살해 의도를 갖고 사전에 모의해 이뤄진 범행임을 입증하겠다"고 예고하며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제주 변호사 피살사건 2심…부검의·혈흔 분석가 증인 신청
광주고법 제주형사1부(이경훈 부장판사)는 11일 살인과 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56) 씨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을 진행했다.

1심에서는 살인 혐의는 무죄고, 협박 혐의만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검찰은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 양형 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했고 피고인 역시 협박에 대한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검찰은 "1심 재판부는 살인 실행범의 우발적 범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지만, 실행범은 날카롭게 특수 제작된 흉기를 준비해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부위를 찌르는 등 처음부터 살인의 고의를 갖고 범행했고, 피고인도 그런 범행 과정 전반에 관여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부검의와 사건 현장 혈흔 분석 감정서를 작성한 교수 등을 증인으로 신청, 우발적 범행과의 차이 등을 입증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제주지역 조직폭력배 유탁파의 전 행동대원인 김씨는 1999년 8∼9월 "골치 아픈 문제가 있어 이 변호사를 손 좀 봐줘야겠다"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동갑내기 조직원 손모 씨와 함께 범행을 공모하고 실행에 옮긴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손씨가 같은 해 11월 5일 오전 3시 15분에서 6시 20분 사이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노상에 있던 피해자를 발견하고 흉기로 피해자의 가슴과 복부를 3차례 찔러 살해한 것으로 봤다.

검찰은 김씨가 사건 당시 구체적인 범행 지시를 내리는 등 사실상 손씨와 공모해 범행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김씨에게 공모공동정범 법리를 적용했다.

공모공동정범이란 2명 이상이 범죄를 공모한 뒤 그 공모자 중 일부만 실행에 나아간 경우 실행을 담당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공동으로 범죄 책임이 있다는 법리다.

이 사건은 김씨가 2020년 6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살인을 교사했다고 자백하는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라 재수사가 이뤄졌다.

1심 재판부는 "성명불상의 인물이 발각될 위험을 감수하고 피고인에게 살인을 지시했을지부터가 의문"이라며 "피의자 진술 외 별다른 추가 증거가 없고, 검찰이 제시한 증거 중 상당 부분은 가능성과 추정만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부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려면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사실이 증명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을 향해 "법률적 판단이 무죄라는 것"이라며 "그 이상은 설명하지 않겠다"고 여운을 남긴 바 있다.

김씨에 대한 항소심 두 번째 공판은 다음 달 15일 열릴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