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려오다 이제야 되새김질"…내달까지 기념전 '책·사람·자연'
"1980년대 가장 기억 남아…어린이·청소년·인문 분야에 집중"
'불혹' 접어든 사계절출판사…강맑실 대표 "40년이 찰나 같아"
"40년간 시대의 변화라는 거센 물결 속에서 사계절이 어떻게 대응할지 연구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뒤를 돌아보거나 위를 올려다보지 않고 끝이 안 보이는 계단을 그냥 꾸준히 올라가기만 했죠. 이제야 되새김질을 하게 되네요.

"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 6월 1일, 민주화와 통일의 발판이 될 사상과 이론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에 따라 인문사회과학서 출판사로 창립된 사계절이 다음 달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초기 10년간은 사회과학 서적 위주로 책을 펴냈지만 이후 어린이·청소년·인문 서적 전문 출판사로 자리매김했다.

사계절을 이끄는 강맑실(66) 대표의 삶은 그동안 출간한 책 곳곳에 배어 있다.

'반갑다, 논리야',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마당을 나온 암탉' 등 베스트셀러들이 강 대표의 손을 거쳤다.

그는 1987년 편집자로 사계절에 합류했고, 남편인 김영종 전 대표의 뒤를 이어 1994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창립 40주년 기념전 '사계절 40, 책·사람·자연'이 열리는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에서 지난 10일 연합뉴스와 만난 강 대표는 "출판사의 역사를 살피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계절을 사랑해준 독자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 별도의 공간을 만들고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불혹' 접어든 사계절출판사…강맑실 대표 "40년이 찰나 같아"
지난달 26일 시작해 다음 달 6일까지 40일간 진행되는 이번 기념전은 온라인 북 토크, 작가 사인회, 만화 그리기, 수수께끼 풀기, 동시 백일장 등 행사가 무료로 진행된다.

지난주 어린이날에는 2천 명이 몰렸고 온라인에서 꾸준히 호평이 이어지는 등 입소문을 타고 있다.

강 대표는 "기념전을 준비하며 40년이 찰나와 같다고 느꼈다.

매 순간 즐겁게 열정을 쏟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헛짓거리를 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계절도 내 삶도 마찬가지"라며 웃었다.

내년이 입사 20년 차인 김태희 총괄팀장은 "시대정신과 성장이란 키워드를 일관되게 좇아온 게 사계절이 올곧게 걸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인 것 같다"며 "동료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게 사계절의 정신"이라고 부연했다.

입사한 지 두 달 된 윤설희 사원은 "출판사 이름처럼 사계절 내내 누구도 소외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기획을 하고 싶다"며 "이미 사계절이 그렇게 해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그 방향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불혹' 접어든 사계절출판사…강맑실 대표 "40년이 찰나 같아"
강 대표는 1980년대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남편이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여러 차례 구속되는 걸 보면서도 힘들어하지 않았다고 했다.

투쟁하려고 나선 삶이라면 이런 상황도 담당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어떤 책을 기획할까 더 고민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강 대표에게 남편은 든든한 지원군이다.

강 대표는 "여전히 투사다.

나이가 들어도 세상을 향한 칼날은 무뎌지지 않았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게 자극을 주는 사람이며 불편한 존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1994년 대표직을 내려놓은 뒤엔 업무 관련 조언 등을 전혀 해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직원들 전체가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도 했다.

김 전 대표는 현재 사계절 이사 직함만 있으며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실크로드 길 위의 역사와 사람들'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불혹' 접어든 사계절출판사…강맑실 대표 "40년이 찰나 같아"
강 대표는 "1994년에 대표가 되고 2~3년간은 팔릴 만한 건 다 내보자는 생각으로 영어, 의학, 실용서, 경제·경영 등 분야의 책들을 출간했다"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매출도 잘 나오지 않아 핵심 역량에 집중하자고 방향을 다시 바꿨다.

헤매면서 큰 교훈을 얻었다"며 우여곡절을 겪었던 때도 떠올렸다.

그는 '이야기 파라독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전래동화' 등은 지금도 애착이 가는 책이라고 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어린이·청소년·인문 분야로 방향을 전환하던 시기에 편집부장으로서 책을 만든 시절이라며 "제일 다정하고 소중하게 남아 있는 책들"이라고 강조했다.

사계절은 앞으로도 어린이·청소년·인문 분야란 큰 틀에서 벗어나진 않을 계획이다.

기획의 다변화와 확장을 꾀하겠지만 기존 분야를 특화해 전문 출판사로 거듭나겠다는 게 강 대표의 구상이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국내 최초로 소개하기도 한 만큼 기회가 된다면 북한의 고전문학 등도 국내에서 출판하고 싶다고 했다.

"출판이라는 한 길을 걸어오면서 어떤 추상적인 비전이나 목표를 따로 둔 적은 없어요.

그런 건 그때그때 대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거니까요.

어떤 책을 낼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꾸준히 걸어가야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