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가 인상적이다. 2624자의 16분짜리 연설에서 도약과 빠른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장 없이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양극화와 사회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진단이다. 취임 전 “저는 오직 한 가지 목표밖에 없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모든 것”이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제대로 된 문제 인식과 해법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윤 대통령의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쉬운 길로 가지 말라’는 것이다.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품이 많이 드는 정치를 해달라는 주문이다. 그것이 윤 대통령 자신과 소속 당이 살고, 나라도 부강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과거 5년을 되돌아보면 알 수 있다.

쉬운길 가다 나라 망친 文정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진영과 연령, 업종별로 정확히 나라를 반으로 갈라치는 정치를 고집했다. 경제도 내 편만 챙기는 쉬운 정책으로 일관했다. 성장을 통해 임금을 올리는 복잡하고 어려운 길 대신 임금을 인위적으로 끌어 올리는 ‘발묘조장(拔苗助長)’식 소득주도성장론이나 주택 공급과 이해 충돌 조정 대신 세금과 규제로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20차례가 넘는 부동산 대책이 다 그런 사례다. 이 밖에도 혁신 기업과 기존 산업이 부딪쳤을 때 어김없이 기득권의 손을 들어주는 등 쉬운 정치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문 정권은 엉터리 정책들이 실패로 귀결되자 여론 조작과 통계 분식을 서슴지 않았고, 이를 견제할 언론과 사정기관에 대한 무력화도 임기 말까지 중단하지 않았다. 자유주의의 대가 존 스튜어트 밀이 경계했던 ‘다수에 의한 전제정(制政)’이고,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오스가 말한 ‘타락한 민주주의’에 다름 아니다.

사회경제학자 한지원은 저서 《대통령의 숙제》에서 ‘경제가 흐르는 물이라면, 민주주의는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했다. 민주주의 수준이 경제적 수준의 상한선을 정한다는 것이다. 문 정권의 편가르기 반쪽 정치, 값싼 감성 정치가 어떻게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었는지는 목도하는 그대로다. 5년간 기업 투자와 좋은 일자리가 줄고, 가계·정부 부채만 세계 최고 속도로 폭증한 것이 비단 코로나 탓만이 아니라는 것은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인정하는 바다.

품드는 정치해야 여대야소 가능

우려되는 점은 새 정권 내에서도 문재인류의 ‘쉬운 정치’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졸속 합의한 게 그런 사례다. 국민의힘은 60% 넘는 국민이 ‘도둑이 포졸 없애는 법’이라며 반대하는데도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덜컥 합승했다. 그러면서 “여당이 밀어붙이려 해서” “의석수가 부족해서”라고 변명했다. 뭔가를 쉽게 얻기 위해 ‘야합(野合)’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윤 대통령 앞엔 복합 경제위기 대응과 북핵 관리, 부동산 정책 정상화, 원전 유턴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거대 야당의 존재는 국정운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려움이 이중삼중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국민들이 ‘정치 신인’ 윤석열을 한국 정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 이유에 답이 있다. 전임처럼 ‘쉬운 정치’를 하지 말고, 정치적으로 가시밭길을 걷더라도 원칙과 상식에 맞는 정치를 하라는 명령이다. 벽에 부딪혔을 때 꼼수 부리지 말고, 죽을힘을 다해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라는 것이다. 그런 진심을 보여야 국민들도 2년 후 총선에서 ‘여대야소’로 화답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