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고급 대형 주상복합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사진=한경DB
대표적 고급 대형 주상복합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사진=한경DB
지난해 한 30대 중국인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타워팰리스 펜트하우스를 89억원에 매입했다.

자기자금은 한 푼도 없는 100% 대출을 통한 매입이었다는 게 알려지며 역차별 논란이 거셌다. 대한민국 국민은 조정대상지역 등에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40%를 적용받는 등 각종 규제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반면 외국인은 해외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 아무런 금융 규제도 받지 않는다.

지난 5년간 두배 넘게 뛴 부동산 가격의 원인 중 하나로 외국인 투기를 지목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집값 급등기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외국인의 주택 매입이 늘면서 시장을 교란한다는 주장이다. 법원 등기정보광장 자료에 따르면 확정일자를 받은 외국인 임대인은 2017년 8368명에서 지난해에는 1만2224명으로 증가했다.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보유규모는 사상 최대 수준이다.

외국인의 투기성 부동산 매입은 외국에서도 문제다. 캐나다는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2년간 외국인의 주택매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해외 큰손이 캐나다에 거주하지도 않으면서 매물을 싹쓸이해 정작 살 곳이 필요한 캐나다 국민은 집을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의 부동산거래를 규제 하는 등의 다양한 법안이 꾸준히 발의 돼 왔다. 하지만 외국인에 대한 차별논란으로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20년11월 발의됐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몇달 후 스스로 폐기한 지방세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정일영 의원이 대표발의 한 이 법은 외국인이 국내 주택을 매수한 뒤 정당한 사유 없이 6개월 동안 실거주하지 않을 경우 취득세를 20% 중과하는 내용으로 지난해 폐기됐다. 지금도 국회에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투자를 규제하기 위한 취지의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 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국회통과가 불투명하다.

가장 최근 열렸던 지난해 12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에서 국민의힘의 홍석준 의원(2020년12월)과 태영호 의원(2021년7월)이 각각 발의했던 이 법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외국인의 부동산 투자가 시장을 교란시키는 면이 있다는 주장과 현실적으로 외국인 부동산 투자를 규제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맞붙으며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해당 법안은 현재 토지에만 적용되는 ‘상호주의 원칙’을 건축물로 확장하는 게 골자다. 주거용 부동산에 대해 해당 국가가 대한민국 국민에 대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외국인의 주거용 부동산 취득 및 양도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외국인 등이 취득하려는 토지가 조정대상지역 등에 있는 경우 토지취득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최시억 국토위 수석전무위원은 “개정안은 대한민국정부 및 국민을 보호하고 주거용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달성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취지는 긍정적으로 보여진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취득허가에 대해서는 “과도한 규제로 비칠 가능성이 있고 우리나라 국민의 해외 부동산 구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무부처인 국토부도 회의적이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부동산 취득을 제한하는 나라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 △정치 경제적 체제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면 상대국과 동일 조건의 권리를 부여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를 댔다.


같은 국민의힘 내에서도 법안폐기 의견이 나왔다. 김희국 의원은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에 어떻게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냐“며 “외교와 달리 토지 정책이나 주택 구입에 관한 정책은 상호주의가 아니라 우리나라 실정에 맞도록 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송석준 의원은 외국인의 무분별한 투자가 시장을 교란시키는 측면을 보다 면밀히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외국인들의 구매 행위에 의해서 부동산 시장에 많은 교란이 있다는 점에 우려가 적지 않다”며 “입법의 취지가 아직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계류시켜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 더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외국인의 투기성 주택거래를 규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규제안은 전문위원 심사를 통과한 국민제안 20개 중 하나로 올랐다. 지난달 초 정책 선호도 조사에선 가장 우수한 정책 제안 4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 국정과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부동산 취득 규제는 요동치는 부동산 민심을 잡는 데 긍정적일 수 있다”며 “다만 외국인의 투기성거래를 판단할 데이터가 없고 자칫 상호주의 원칙을 위배할 가능성 등이 있는 점은 부담”이라고 했다. 외국인 부동산취득에 대해서는 거주·비거주 여부, 용도 등을 신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의미있는 통계를 축적하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