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세계 유일 '핸드드라이어 금지국' 된 까닭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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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흔들린다(10) 책임 안 지는 사회
2020년 5월 게이단렌 "핸드드라이어 중지" 제안
"핸드드라이어 코로나19 감염 가능성 0.01%" 연구결과
게이단렌 '사용재개' 요청했지만 日정부 거부
'핸드드라이어 감염자 1명이라도 나오면 책임추궁' 우려
2020년 5월 게이단렌 "핸드드라이어 중지" 제안
"핸드드라이어 코로나19 감염 가능성 0.01%" 연구결과
게이단렌 '사용재개' 요청했지만 日정부 거부
'핸드드라이어 감염자 1명이라도 나오면 책임추궁' 우려
도쿄 시나가와구 운하변에 있는 수제맥주 전문 레스토랑 T.Y.하버는 영국의 부촌 리치먼드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로 언제나 외국인 손님이 몰린다. 이 식당 화장실에는 젖은 손을 말릴 수 있는 핸드드라이어가 설치 돼 있지만 '사용중지' 안내문이 붙어있다. T.Y.하버 매니저는 "도쿄도의 지침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T.Y.하버 뿐만이 아니다. 2020년 5월 이후 도심 오피스빌딩과 대형 쇼핑몰 등 대부분의 화장실에 설치된 핸드드라이어가 사용이 중지됐다. 일본의 공용시설 화장실에 설치된 핸드드라이어는 100만대 이상으로 추산된다.
게이단렌은 2020년 5월 열린 정부 산하 전문가회의에서 핸드드라이어에 의한 감염 위험을 지적하고, 이용 자제를 요청했다. 일본 정부가 게이단렌의 요청에 응하면서 일본 전역의 핸드드라이어가 일제히 멈추게 됐다.
핸드드라이어가 정말 코로나19 확산의 원인인지는 사용중지 방침이 내려졌을 때부터 논란거리였다. 논란이 커지자 결국 게이단렌은 핸드드라이어의 감염위험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홋카이도대학의 감염병 전문 교수팀에 연구를 의뢰했다.
그 사이 일본 최대 제지회사 가운데 하나인 일본제지그룹은 "핸드드라이어를 사용하면 씻기 전보다 더 손이 오염될 위험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자사 사이트에 게재하기도 했다. 핸드드라이어 사용을 재개하려는 게이단렌을 견제하기 위한 작업이란 뒷말이 나왔다. 핸드드라이어의 대체제인 종이수건 소비량 증가로 제지업계는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대의 연구 결과 이용자가 일반적인 방법으로 핸드드라이어를 사용할 경우 감염 확률은 0.0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 28개국 가운데 코로나19 확산 이후 핸드드라이어 사용을 금지한 나라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2021년 4월13일 게이단렌은 기자회견을 통해 40페이지 짜리 자료를 내고 핸드드라이어 사용을 금한 코로나19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1500여 회원사에 대해서도 정기적으로 알콜 소독 등 관리를 하면 핸드드라이어를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전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 정부가 게이단렌의 '사용중지 철회'에 응하지 않았다. 정부가 사용재개의 지침을 내렸다가 핸드드라이어를 통한 감염 사례가 1건이라도 나오면 여론의 비판을 뒤집어 쓸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정부가 지침을 내리지 않자 대형 쇼핑몰 등 상업시설들도 '만에 하나'의 경우 때문에 책임질 것을 우려해 지방자치단체 지침 등을 근거로 사용을 재개하지 않고 있다. 게이단렌의 산하 단체와 회원기업조차 이용을 재개하는 쪽으로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거나 핸드드라이어를 재가동하는 곳은 드물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게이단렌이 핸드드라이어 사용재개를 발표한 작년 4월은 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운수와 외식업 등 기간산업이 고사 위기에 빠졌을 때였다. 일본의 핸드드라이어 출하대수는 연간 9만대 안팎으로 산업규모가 크지 않다. 일본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미쓰비시전기와 파나소닉, 토토, 릭실그룹 모두 핸드드라이어가 주력 사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그런데도 게이단렌이 회원 기업들의 존속이 걸린 문제보다 핸드드라이어에 집착한 이유 역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많다. 과학적 근거가 있느냐로 논란이 커지는 핸드드라이어 문제를 방치하면 앞으로의 정책 제안과 조직의 신뢰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일본 핸드드라이어 '빅4'인 미쓰비시전기와 파나소닉의 최고경영자(CEO)가 2021년 전후로 게이단렌 부회장을 물려받은 점도 게이단렌이 핸드드라이어 문제에 유독 민감했던 이유로 꼽힌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T.Y.하버 뿐만이 아니다. 2020년 5월 이후 도심 오피스빌딩과 대형 쇼핑몰 등 대부분의 화장실에 설치된 핸드드라이어가 사용이 중지됐다. 일본의 공용시설 화장실에 설치된 핸드드라이어는 100만대 이상으로 추산된다.
세계 유일의 핸드드라이어 금지국
100만대가 넘는 핸드드라이어 대부분이 2년째 멈춰선 계기는 일본 최대 경제단체 게이단렌의 요청이었다. 게이단렌은 2020년 5월 채택한 '코로나19 감염 방지대책 가이드라인'에 핸드드라이어 사용중지를 포함시켰다. 핸드드라이어에서 나오는 더운 바람이 비말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게이단렌은 2020년 5월 열린 정부 산하 전문가회의에서 핸드드라이어에 의한 감염 위험을 지적하고, 이용 자제를 요청했다. 일본 정부가 게이단렌의 요청에 응하면서 일본 전역의 핸드드라이어가 일제히 멈추게 됐다.
핸드드라이어가 정말 코로나19 확산의 원인인지는 사용중지 방침이 내려졌을 때부터 논란거리였다. 논란이 커지자 결국 게이단렌은 핸드드라이어의 감염위험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홋카이도대학의 감염병 전문 교수팀에 연구를 의뢰했다.
그 사이 일본 최대 제지회사 가운데 하나인 일본제지그룹은 "핸드드라이어를 사용하면 씻기 전보다 더 손이 오염될 위험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자사 사이트에 게재하기도 했다. 핸드드라이어 사용을 재개하려는 게이단렌을 견제하기 위한 작업이란 뒷말이 나왔다. 핸드드라이어의 대체제인 종이수건 소비량 증가로 제지업계는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대의 연구 결과 이용자가 일반적인 방법으로 핸드드라이어를 사용할 경우 감염 확률은 0.0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 28개국 가운데 코로나19 확산 이후 핸드드라이어 사용을 금지한 나라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2021년 4월13일 게이단렌은 기자회견을 통해 40페이지 짜리 자료를 내고 핸드드라이어 사용을 금한 코로나19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1500여 회원사에 대해서도 정기적으로 알콜 소독 등 관리를 하면 핸드드라이어를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전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 정부가 게이단렌의 '사용중지 철회'에 응하지 않았다. 정부가 사용재개의 지침을 내렸다가 핸드드라이어를 통한 감염 사례가 1건이라도 나오면 여론의 비판을 뒤집어 쓸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정부가 지침을 내리지 않자 대형 쇼핑몰 등 상업시설들도 '만에 하나'의 경우 때문에 책임질 것을 우려해 지방자치단체 지침 등을 근거로 사용을 재개하지 않고 있다. 게이단렌의 산하 단체와 회원기업조차 이용을 재개하는 쪽으로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거나 핸드드라이어를 재가동하는 곳은 드물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게이단렌, 핸드드라이어 문제 고집한 이유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의 진취적인 면모가 사라지고 만성적인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으로 사회 전반에 뿌리깊은 '책임 안 지려는 문화'를 꼽는다. 일상 생활 속에서 정치 지도자는 물론 관공서 공무원부터 동네 편의점 직원까지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아니라고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식의 책임회피 어법이 만연한 것이 사례로 거론되다.게이단렌이 핸드드라이어 사용재개를 발표한 작년 4월은 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운수와 외식업 등 기간산업이 고사 위기에 빠졌을 때였다. 일본의 핸드드라이어 출하대수는 연간 9만대 안팎으로 산업규모가 크지 않다. 일본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미쓰비시전기와 파나소닉, 토토, 릭실그룹 모두 핸드드라이어가 주력 사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그런데도 게이단렌이 회원 기업들의 존속이 걸린 문제보다 핸드드라이어에 집착한 이유 역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많다. 과학적 근거가 있느냐로 논란이 커지는 핸드드라이어 문제를 방치하면 앞으로의 정책 제안과 조직의 신뢰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일본 핸드드라이어 '빅4'인 미쓰비시전기와 파나소닉의 최고경영자(CEO)가 2021년 전후로 게이단렌 부회장을 물려받은 점도 게이단렌이 핸드드라이어 문제에 유독 민감했던 이유로 꼽힌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