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꽉 막힌 칸막이 행정
자자체마다 양식 달라 '혼란'
각 부처로 업무 뿔뿔이 분산
생년월일도 어떤 서류는 서력으로만, 또 다른 서류는 일본 연호로 기입하도록 했다. 일본인들도 가로쓰기와 세로쓰기, 전각과 반각(한자 표기법) 등 제각각인 서류 양식 때문에 당황하기 일쑤다.
일본 미디어들은 “일본 관공서의 문서 입력 방법은 1718가지”라고 자조한다. 1718개는 일본 기초자치단체 수다. 일본 행정법상 주민등록 등의 업무는 지자체의 고유 권한이어서 서류 양식과 기입 방식을 독자적으로 결정한다. 1960년 오사카시를 시작으로 컴퓨터가 도입되자 1718개 지자체는 시스템을 각각 도입했다. 지자체마다, 심지어 같은 지자체 내에서도 서류 양식과 기입 방법이 제각각인 이유다. 저마다 다른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고 경신하는 데만 매년 일본 정부 디지털 예산의 절반인 5000억엔(약 4조8635억원)이 들어간다.
지자체별로 다른 시스템은 일본 행정의 디지털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코로나19가 확산했을 때 관련 부처들이 온라인 회의를 열지 못하고, 지자체들이 감염 상황을 팩스로 집계한 것도 관공서 시스템이 저마다 달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국과 한국이 2주 만에 끝낸 코로나 지원금 지급을 일본은 6개월이나 걸려서야 마칠 수 있었다. 히라이 다쿠야 디지털개혁 담당상은 “코로나19와의 싸움은 디지털 패전”이라고 말했다.
2001년 일본 정부는 5년 내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국가를 건설한다는 ‘e-재팬’ 전략을 내걸었다. 하지만 2020년 유엔 전자정부 순위에서 일본은 14위로 처져 있다. 일본과 같은 해 디지털화를 추진한 덴마크는 세계 1위, 1997년부터 디지털화에 나선 한국은 2위다.
일본의 디지털화가 구호에 그친 가장 큰 원인으로 칸막이 행정이 지적된다. 디지털 업무가 종합전략과 마이넘버 카드(한국의 주민등록번호)는 내각관방, 지자체 디지털화는 총무성, 민간 부문 디지털화는 경제산업성으로 흩어져 있었다. 온라인 진료는 후생노동성, 원격교육은 문부과학성, 운전면허증은 경찰청 소관이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