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장들 '근로자성' 소송 동시 심리…2건은 인정·4건은 불인정
계약 형식 비슷해도 근로자성 판단은 제각각…"지휘·감독 형태 등 보고 판단"

보험회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지점의 운영·관리 및 보험설계사의 교육 업무를 수행한 이른바 '위탁계약형 지점장'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다만 대법원은 동시에 심리한 6건 중 명칭과 계약서 형식이 외형상 같은 일부 위탁계약형 지점장은 법적인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직종이나 직위에 따라 기계적으로 동일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되며 구체적 업무 형태에 따라 근로자성 인정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보험사 '위탁계약형 지점장'은 근로자?…상반된 판단 내린 대법
◇ 대법 "회사가 구체적 업무 지시하고 근태관리했다면 근로자"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A 보험사의 지점장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14일 확정했다.

같은 날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B 보험사의 '사업가형 지점장'이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지점장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며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이 이들 위탁계약형 지점장을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보험회사에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라고 판단한 이유는 업무 형태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보험사들은 상위 영업조직이 하위 영업조직을 관리·감독하는 구조였다.

상위 영업조직의 장이 위탁계약형 지점장에게 실적 목표를 제시하고 목표 달성을 독려하는 차원을 넘어 실적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업무 내용에 관해 일일 업무보고를 받는 등 상당한 지휘·감독을 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고정급을 받는 정규직 지점장은 아니었지만 실제 업무 형태가 정규직 지점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규직 지점장과 비슷한 시간에 보험사 지점 사무실에 출근해 일했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근태관리도 이뤄졌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보험사 '위탁계약형 지점장'은 근로자?…상반된 판단 내린 대법
◇ 자율적으로 일하고 수수료 격차 큰 지점장들, 근로자성 인정 못 받아
반면 같은 날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와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로 나뉘어 진행된 퇴직금 등 청구소송 4건에서는 위탁계약형 지점장들을 법적인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C 보험사와 D 보험사에서 위임직 지점장 등 형태로 일한 원고들이 회사로부터 업무 계획이나 실적 목표 등의 달성을 독려받기는 했지만, 공지·통보된 내용은 추상적이거나 일반적이었고 보험사가 지점장들의 업무를 일일이 정하거나 지휘·감독하지는 않았다고 봤다.

예를 들어 C사는 위탁계약형 지점장을 대상으로 신규 보험상품을 알리고 영업 노하우를 전수하거나 불완전판매를 방지하기 위한 회의·세미나·교육을 했는데, 이는 규제사항과 관련한 관리·감독 의무를 이행한 것이지 사용자로서 근로자를 교육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C·D사 지점장들은 자율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업무를 수행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위탁계약형 지점장들이 자기 돈을 들여 업무보조인력을 직접 채용했고, 소속 보험설계사의 해촉으로 수수료를 환수당하기도 한 점 등을 들어 이들에게 근로자가 아니라 독립된 사업자로서의 비용·책임 부담을 인정할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수료 격차도 커 수수료를 임금으로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보험사 '위탁계약형 지점장'은 근로자?…상반된 판단 내린 대법
◇ 위탁계약형 지점장 근로자성 첫 판단…지휘·감독·근태관리 등이 기준
이번 판결은 보험사 위탁계약형 지점장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에 관해 대법원이 최초로 판단을 내린 사례다.

대법원 관계자는 "근로자성 판단 대상이 모두 보험회사 위탁계약형 지점장으로 같다고 해도 개별 사건에서 업무 형태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며 "직종이나 지위 등에 따라 기계적으로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입장은 기존 대법원 판례의 연장선에 있다.

어떤 이가 법적으로 근로자인지 아닌지는 형식적 계약 내용보다 실질적인 사실관계에 더 무게를 두고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다.

이번 소송들에서는 ▲ 본사 방침이나 영업조직을 통해 위탁계약형 지점장을 관리하는 방식이나 정도가 업무 수행에 관한 상당한 지휘·감독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 근무시간 등에 구속을 당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 자신의 계산으로 지점 운영비용을 투입하거나 사업상 위험을 부담하는지 등이 고려됐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