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수사 제한에 수사·기소 분리…검찰총장 국회 보고까지 끼워 넣어
법학자들 "국가 제도 제거 후 비현실적 유니콘 도입…진정한 검찰개혁 방기"
'검수완박' 강행에 검사들 "법과 이성 상실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한 26일 검찰 내부에서는 법안 내용 분석과 비판을 담은 목소리가 빗발쳤다.

우선 검사의 보완수사를 경찰이 송치한 사건과 '동일한 범죄사실'의 범위 안에서만 허용한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됐다.

한 부장검사는 "경찰이 미처 밝히지 못한 더 나쁜 범죄나 배후의 공범에게만 좋은 법안"이라며 "아동학대 사건을 송치받았다면 성폭력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더라도 수사할 수 없고, 허위 고소로 누명을 썼다고 해도 무고 수사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살인사건이나 뇌물사건부터 아동성착취물사건까지 검찰의 보완으로 추가 혐의가 드러날 수 있는 수사의 가능성이 닫혀버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검사가 수사한 사건을 직접 기소하지 못하도록 한 검찰청법 개정 내용 역시 비판 대상이 됐다.

개정안은 '검사는 자신이 수사 개시한 범죄에 대하여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데, 이대로라면 사건의 내용을 잘 아는 수사 검사가 아니라 별도의 검사가 기록만을 보고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다수의 피해자가 있어 기록이 방대한 사건은 처리가 지연될 수밖에 없어 결국 피해자들만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라거나 "피의자 구속 기간 안에 검사가 사건 파악이 어려우면 일단 석방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왔다.

민주당은 애초 수사검사가 공소유지도 못하게 법안을 만들었다가 심사 과정에서 "자칫 형사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수사 검사가 참여하면 재판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법원행정처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공소 유지에는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대해서도 한 검찰 관계자는 "기소는 못 하고 공소 유지는 가능하다는 것도 논리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재개된 '산업부 블랙리스트'나 월성 원전 등 공직자범죄 수사와 선거범죄 수사 역량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특히 국회의원 당선 무효 사건은 대부분 검찰이 수사해왔기에 의원들이 검찰 수사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법안 개정을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를 의식해 민주당도 정의당의 의견을 받아들여 6월 지방선거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는 올 연말까지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남겨뒀지만, 한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검찰 내에선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에서 제외된 대형참사의 경우 예전처럼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진다면 수사개시권이 없는 검사의 참여는 위법 수사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검찰총장이 수사부서 검사 등의 현황을 분기별로 국회에 보고하도록 한 조항을 두고도 "합의문에도 없는 내용을 슬쩍 끼워 넣었다"며 "'권력 비리를 수사할 수 있는 검사들이 이렇게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하는 셈"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검찰은 개정안의 내용도 문제지만 민주당이 충분한 토론이나 고민 없이 사실상 법안을 '날치기 통과' 시키려는 행태에 혀를 차고 있다.

김후곤 대구지검장은 민주당의 수정안이 법사위 법안소위를 통과하자 자신의 SNS에 "내용을 떠나 절차적 정당성마저 내팽개친 기가 막힌 상황"이라면서 "이런 법을 우리 국민들이 지켜야 하다니. 우리는 법과 이성을 모두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근수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을 향해 "소통과 협치, 합의를 중시하시는 의장님의 평생 신조, 신념을 지키시어 합의되지 않은 법안, 공청회도 거치지 않은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법학자들도 한국형사소송법학회가 이날 주최한 '검수완박' 관련 긴급 토론회에서 한목소리로 법안 강행 처리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창온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입법의 움직임은 국가의 제도적 문제점이 발생하는 원인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제도를 의인화해 도덕적으로 비난한 뒤 제도 자체를 제거해버리고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을 도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박용철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과 경찰은 상호 협력·견제로 공존해야 한다"며 "작금의 '검수완박' 법률안 통과 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검찰개혁,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수사기관을 가져야 한다는 어젠다의 실현을 상당 기간 늦추거나 사실상 방기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