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글로비스 3대 주주인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미국 칼라일그룹의 투자팀이 한국을 찾아 현대자동차그룹 경영진과 만났다.
현대차·칼라일, 글로비스 가치 띄우기 나섰다
지난 1월 칼라일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인수한 뒤 국내에서 경영진 간 이뤄진 첫 만남이다. 현대차그룹과 칼라일이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높인 뒤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대글로비스 IR부터 강화

25일 경제계와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칼라일의 현대글로비스 투자팀은 지난주 1주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칼라일 일행은 현대차그룹 등을 찾아 경영진과 만나고 현대글로비스 울산 물류센터 등 영업 현장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칼라일과 현대차그룹은 현대글로비스의 성장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행보는 기업설명회(IR) 강화다. 현대글로비스의 사업부문별 매출은 중고차 등 유통 판매(52%), 화물 운송 등 종합물류(33%), 자동차선 등 해운사업(15%) 순이다. ‘현대차가 만든 차를 배로 실어 나르는 회사’로만 알려져 저평가됐다는 게 칼라일 측 생각이다.

현대글로비스의 신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의견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하는 것은 로보틱스 분야다. 세계 최고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현대차그룹은 현대글로비스의 주력 사업인 물류와 관련, 물품 선별과 이송 등 물류 자동화에 로봇을 투입할 계획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최근 액화천연가스(LNG) 운송 사업에 뛰어들면서 수소 공급 시장 선점도 노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가진 칼라일은 일반주주와는 성격이 다르다”며 “현대글로비스 가치를 높이고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도 큰 역할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출자구조 재편 전망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높인 뒤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칼라일과의 이번 만남에서도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정 회장이 가장 많은 지분(19.99%)을 보유한 회사다. 이 지분은 정 회장이 지배구조 개편에 활용할 중요한 재원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하반기에 출자구조 재편 기회를 찾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 과정에서 칼라일도 현대차그룹에 대한 추가 투자 기회를 노릴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순환출자 해소, 대주주 책임경영 강화 등을 위해 출자구조 재편을 추진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가지고 있다. 이들 주요 3사에 대한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 부자의 지분율은 각각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현대차그룹은 취약한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현대모비스를 투자사업부문(존속)과 AS사업부문으로 인적 분할하고, AS사업부문은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동시에 기아, 현대글로비스 등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정 회장에게 매각해 ‘대주주→존속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대모비스 AS사업부문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했다는 여론으로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시장에선 현대차그룹이 2018년 지배구조 개편안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출자구조를 재편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모비스 AS부문을 분할·상장해 시장의 평가를 받은 뒤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후 정 회장이 합병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으로 전환해 지배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김일규/김채연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