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맨 오른쪽)가 25일 서울 세종대로 한은 브리핑룸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맨 오른쪽)가 25일 서울 세종대로 한은 브리핑룸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5일 “(현재 나온) 양극화 해결 정책이 하위 30%를 올리려는 건지, 상위 10%를 내리려는 건지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양극화 해법이 상위 10%를 끌어내리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민간이 할 일을 정부가 하려면 할 수도 없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며 ‘민간 중심의 경제 성장’을 강조했다.

“양극화 해결 중요하지만…”

이 총재는 이날 서울 태평로 한은 본관에서 열린 취임식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기술 발전으로 양극화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21일 취임한 이 총재는 당시 취임사에서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구조개혁을 강조하면서 나타나는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지나친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켜 우리의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킬 것이기에 이에 대한 해결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 총재는 이날 양극화 해법과 관련, “취약층인 하위 30%를 끌어올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양극화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중산층을 겨냥해 정치적으로 인기가 있지만, 결국 모두가 조금씩 나눠 갖고 효과는 없는 정책을 하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구체적인 정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의 세(稅) 부담을 높여 분배하는 방식이 아니라 저소득층의 자립을 높이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 국장 시절 한국의 양극화 정책과 관련해 한국담당팀에 이런 평가를 주문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미스터 쓴소리’ 된 이창용

이 총재는 한은 총재 후보자로 지명된 뒤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쓴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 총재는 “한은 총재가 그런 말을 해도 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단기적으로 정부 부처에 조언하는 건 맞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한은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의 성장에 대해선 유효하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총재는 “한국 국민은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압박을 받게 되면 모든 일을 정부가 하려고 하고, 부작용도 많다”고 했다. 이어 “과거 정부 주도 성장에 대한 향수와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며 “지금 시점에서는 정부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기 어려운 것, 하면 부작용이 있는 걸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타다 금지법’ 비판도

이 총재는 한국의 정책이 공급자 위주로 결정되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이 총재는 “이제는 정책이 수요자 편의에 기여하는지 따져보고 균형을 취해야 한다”며 “규제를 완화한다고 했을 때 기존 시장에 존재하는 기업을 위한 편의인지,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서 소비자에게 편의가 돌아가도록 하는지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이 총재는 수요자를 고려하지 않은 공급자 위주의 정책 사례로 ‘타다 금지법’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은의 변화도 예고했다. 이 총재는 “한국 경제라는 큰 배가 움직이는데 배가 1도라도 기울어져 있으면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원치 않는 곳에 도달할 것”이라며 “큰 배가 움직일 때 각도가 맞는지(조언하는 역할을), 역풍이 불 때 조심하자는 조언을 하는 역할을 한은이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장기 성장률에 관한 한 비둘기파(성장을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 선호)가 되고 싶다”며 “한국이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여 고령화가 진행되더라도 성장률이 너무 빨리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