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지검 중 첫 '검수완박' 반발 간담회…"전문 경제사범 등 수사 공백 우려" "벼랑 끝 폭주 기관차 검수완박 멈춰달라…검찰 공정성 장치 도입 등 노력"
배용원 서울북부지검장은 22일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추진과 관련해 "편법 사보임과 위장 탈당 등 전대미문의 부끄러운 상황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국민들 앞에 생중계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 지검장은 이날 오전 서울 도봉구 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70년 형사사법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문제를 공청회, 토론 등 충분한 의견수렴과 숙고의 시간도 없이 한 달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졸속으로 강행 처리하려고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시행된 지 이제 1년 남짓 됐고, 수사와 재판 현장은 아직도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며 "개정 형사소송법의 성과와 문제점을 제대로 평가하고 보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배 지검장은 작년 4월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26)을 살인·절도 등 혐의로 구속기소 한 데 대해 "경찰에서 송치된 후 우발범행을 주장하는 등 일부 진술을 번복한 피의자를 검사는 총 5차례, 50시간 이상에 걸친 조사 등 보완수사를 통해 계획적인 범행임을 밝혀내 무기징역이 선고됐다"고 말했다.
또 경찰이 디지털포렌식한 김태현의 휴대전화를 대검찰청에서 재차 포렌식 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에서 피해자의 주소 관련 키워드를 검색한 사실과 피해자와의 대화 등 새로운 내용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배 지검장은 "앞으로 법안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제2, 제3의 김태현 살인사건은 제대로 처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며 "검사는 피해자들의 호소를 들을 수 없게 되고 기록 너머 숨겨진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어렵게 된다"고 주장했다.
김태현 사건 이외에도 경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은 범죄 사실을 검찰의 보완 수사를 통해 밝힌 사례는 다수 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박혁수 북부지검 형사1부장검사는 "일반적인 절도나 강도 사건은 경찰이 검사들보다 훨씬 압도적인 수사력을 가졌을 것"이라면서도 "명예훼손과 지식재산권, 자본시장법·유사수신법 위반 사건 등 전문 경제 사범은 경찰이 검찰과 협업해 검찰의 법률자문을 받아 수사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수완박이 시행되면 이런 사건들의 처리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경지검 중 지검 차원에서 '검수완박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북부지검이 처음이다.
동부지검에서는 이달 12일 심우정 지검장이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 관련 간담회에서 검수완박 관련 우려를 표명한 바 있고, 남부지검에서는 이달 20일 금융·증권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부장검사 4명이 검수완박 반대 호소문을 발표했다.
배 지검장은 "서울 북부지역의 검찰청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법안이 시행됐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들이 뭔지 말씀드리는 것이 맞겠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자리에 섰다"고 했다.
이어 북부지검이 '조세범죄 중점검찰청'으로 지정된 점을 언급하며 "법률상 국세청이 반드시 검찰총장에게 고발해야 하는 조세범죄 사건이 있는데, 법안 시행 시 고발을 전제로 하는 사건은 검찰에서 수사하지 못해 사건이 그대로 '증발'하는 문제가 있다"고 우려했다.
배 지검장은 이 밖에도 검수완박 법안과 관련 ▲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될 가능성 ▲ 경찰 수사에 대한 사법통제 상실 ▲ 형벌 집행 업무의 공백 등을 부작용으로 언급했다.
이어 "벼랑 끝에 도달한 폭주 기관차를 더 늦지 않게 멈춰주시길 간곡히 호소한다"고 했다.
배 지검장은 "그동안 검찰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큰 우려와 지적이 제기됐고 저부터 겸허히 성찰하고 있다"며 "검찰은 수사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통제 장치를 도입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배 지검장은 창원지검 거창지청장과 대검찰청 공안3과장, 수원지검 안양지청 차장검사,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 전주지검장 등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