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스러운 점 있었는데도 담당자에게 확인 하지 않는 등 중대 과실"
계약기관 사칭세력에 연구비 지급한 직원들…감사원 "변상 책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전기연구원(이하 전기연) 직원들이 계약기관을 사칭한 불상의 사기 세력에 위탁연구비를 지급했다가 수천만원씩 변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감사원이 최근 공개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기연은 2013년 수탁연구계약을 수행하던 중 특정 업무를 미국 모 연구기관에 위탁하는 계약을 했다.

계약서상 전기연은 위탁연구비 47억5천만원을 7회로 나눠 위탁연구기관이 지정한 은행 계좌로 송금해야 했다.

이에 2013년 12월부터 2016년 3월 사이 6차례에 걸쳐 42억7천만원 상당을 지정 은행 계좌로 보냈다.

그러나 전기연은 2016년 6월 20일 위탁연구기관의 국내 대리점 관계자로부터 마지막 7회차 위탁연구비 지급 계좌를 다른 은행 계좌로 변경해달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 이틀 뒤인 6월 22일에는 또 다른 은행으로 지급 계좌를 변경해달라는 이메일을 받게 됐는데, 이는 차후 위탁연구기관을 사칭한 사기 세력으로 밝혀진다.

전기연은 그해 6월 20일부터 22일 사이 확인차 위탁연구기관 소속 청구서 발행자에게 전화하거나 이메일을 보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고, 22일부터 28일 사이 사칭 세력으로부터 위조된 '계좌 변경 요청 공문' 등을 받았다.

당시 공문서 등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모른 전기연은 그해 6월 29일 7회차 위탁연구비 4억7천만원 상당을 송금했다.

계약기관 사칭세력에 연구비 지급한 직원들…감사원 "변상 책임"
전기연은 이로부터 한 달 뒤 위탁연구기관의 국내 대리점으로부터 연구비가 미지급됐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사칭 세력에게 송금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결국 전기연은 국제중재법원(International Court of Arbitration)으로부터 중재판정(법원 확정판결과 동일 효력)을 받고 2018년 위탁연구기관에 지연이자 등을 포함해 총 5억2천만원 상당을 지급했다.

이 사이 전기연으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은 경찰은 위탁연구기관 사칭세력이 국내 대리점 측 이메일을 해킹해 7회차 위탁연구비 지급 관련 정보를 습득하고 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했지만, 피의자를 특정할 단서는 찾지 못했다.

전기연은 2019년 위탁연구기관 국내 대리점이 이메일 서버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사칭세력의 불법행위에 책임이 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국내 대리점 측은 창원지법 조정 결정으로 전기연에 4천750만원을 배상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9년 4월 '위탁연구비 허위계좌 국제송금(현금망실)' 사건에 대해 감사를 실시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를 게을리해 (전기연에) 손해를 끼쳤다"며 당초 회계관계직원 6명에게 각 7천900만원 상당을 변상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이들은 부당함을 주장하며 2019년 8월 감사원에 변상 책임 유무 등에 대해 판정을 내려줄 것을 청구했다.

감사원은 감사 실시 결과 회계관계직원 6명 중 당시 선임기술원·책임연구원·실장·부장으로 일하던 4명(2명은 각 3천300만원 상당, 나머지 2명은 각 1천400만원 상당)이 전기연에 변상할 책임이 있는 것으로 최종 판단했다.

감사원은 위탁연구기관의 지급 계좌 변경 요청이 이례적이었고 수취인명이 변경되거나 위탁연구기관의 정상 도메인에서 i가 빠진 도메인이 사용되는 등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는데도 계약서상 위탁연구기관의 지급 계좌 담당자에게 확인하지 않은 점 등이 중대한 과실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전기연이 위탁연구비 지급 사고 이전까지 이메일 해킹 사기 방지 등을 위한 직원 대상 교육을 하지 않은 점 등에 미뤄 기관의 일부 책임이 인정되고, 사기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만큼 직원들에게 손해액 전부를 변상하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변상 금액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