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유행 정점 지났다' 판단…거리두기 종료·의료체계 정상화 전문가들 "칼자루는 바이러스가 쥐고 있어"…방역해제 속도 우려
코로나19 대유행과 함께 우리 삶을 사상 유례없는 방식으로 옥죄어 온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방역 조치가 2년 1개월 만에 드디어 종료된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시작된 팬데믹 사태를 서서히 '엔데믹'(풍토병) 체제로 전환하면서 일상회복을 다시 시도하는 것이다.
지난 2년여간 방역의 핵심 수단이었던 거리두기는 유행 상황에 맞춰 사적모임 인원과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 제한 등을 강화하거나 소폭씩 완화하는 식으로 시행돼왔다.
그러나 정부는 오미크론 대유행이 정점을 지나 감소세로 접어들었다는 판단에 따라 '오미크론 이후'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을 15일 발표하고 내주부터 거리두기를 종료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오는 18일부터는 인원·시간 제한이 완전히 없어지고, 행사·집회도 인원 제한 없이 개최할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거리두기 해제 시점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지만, 중증·사망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 시스템이 원활하게 가동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오미크론 특성 고려, 감염병 등급 하향 조정…확진자 격리 의무 폐지 정부는 이날 공개한 '포스트 오미크론 대응계획'에서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 하향 조정에 따라 일반 의료체계로의 전환을 최종 목표로 하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대응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일반 의료체계 전환까지 준비기·이행기·안착기로 시기를 나누고, 각 시기에 맞는 진단·검사, 격리·지원, 역학조사, 검역, 재택치료, 병상, 응급·특수 환자 및 취약시설 대응 등 분야별 세부 계획을 마련했다.
구체적으로는 현행 의료체계가 대부분 유지되는 이달 24일까지는 '준비기', 코로나19를 제2급 감염병으로 낮추는 고시 개정을 완료하는 25일부터 잠정 4주간은 연착륙을 위한 '이행기'로 뒀다.
'안착기'는 이행기가 끝나는 시점부터 시작된다.
이때는 코로나19 확진자에 부여되는 7일간의 격리 의무가 완전히 해제되며, 진단·검사·치료 등 모든 의료체계가 일반 의료 체계로 전환된다.
이는 오미크론 대유행이 정점을 지나 감소세로 접어들면서 오미크론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대응 계획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수립된 것이다.
앞서 정부는 델타 변이보다 치명률은 낮지만, 전파력은 더 강한 오미크론의 특성을 고려해 동네 병·의원 중심의 검사·치료체계와 재택치료 및 대면 진료 인프라 확충 등 대응체계를 개편했다.
여기에 전 국민의 30% 이상이 감염력을 가진 현 상황에서 일반 의료체계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신종 감염병 발생에 대비하기 위해 중장기 전략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국내 코로나19 사태 초기였던 2020년 3월에 등장해 같은 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거리두기는 약 2년 1개월, 757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앞서 정부는 2020년 3월 22일 종교시설과 일부 사업장에 보름간 '운영제한'을 권고하면서 거리두기를 시작했고, 작년 1월 4일에는 전국적으로 '5명 이상 사적모임 금지'를 적용하면서 대응 수위를 높여왔다.
작년에는 수도권 내 사적모임 인원이 야간시간에 2명으로 제한되고, 카페에서는 테이크아웃만 허용하는 고강도 조치가 시행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을 선언하면서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 제한을 풀기도 했으나, 확진자 급증에 따라 식당·카페의 영업시간을 오후 9시로 제한하는 등 거리두기를 다시 시작해 현행 '10명-밤 12시' 조치까지 일부 규제를 유지해왔다.
◇ "고위험군 신속진단-치료 체계 작동해야"…"유행 감소세는 더뎌질 것" 전문가들은 포스트 오미크론 대응 전략으로 고위험군 보호에 방점을 뒀다.
다만 방역 정책 완화 시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정기석 한림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거리두기는 이미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라며 "(현행) '10명-밤 12시' 이후로 연장하는 건 환자 발생이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있어 (거리두기를) 풀고 가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다만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 조정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교수는 "정부의 노력에도 아직 치명률은 0.1% 수준에서 낮추지 못하고 있다"며 "(먹는 치료제인) 팍스로비드나 여러 가지 치료제와 잘 갖춰진 의료 시스템이 있는데 신속한 진단과 처방·투약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감염병 등급을 1급에서 2급으로 낮추고, 모든 방역 조치를 완화하면 그사이에 희생되는 이들이 생기게 된다"며 "감염자,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로 두고 가는 것이 맞는 방향일지 정부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감염) 취약계층과 고위험군이 빠르게 진단을 받고,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이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완벽하게 갖추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오미크론 유행이 시작된 1월 이후부터는 방역 관련 정책과 지침 변화가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속도 조절을 강조했다.
엄 교수는 "오미크론 유행이 본격화된 시점부터 연이은 방역 완화 결정이 이뤄지면서 유행 전 예측치보다 훨씬 더 많은 환자가 매일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사망자도 많이 늘어난 상황"이라며 "지금은 유행이 정점을 지난 것이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행 정점 시기에 50만명, 60만명씩 환자가 나오던 유행 정점 시기에 비해선 환자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10만명 이상이 나오고 있다"며 "지역사회에 전파력을 가진 감염자가 상당히 많다는 걸 의미하는데, 이 시기에 방역을 완화하면 환자 감소 속도가 느려지고 그만큼 고위험군 감염이 줄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엄 교수는 "이번에 (방역 조치를 해제하면) 확진자 추이는 더 느리게 감소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확진자가 다시 증가할 가능성도 있어서 상당히 우려스럽다"며 "재유행 가능성이 없고, 고위험군 감염자가 충분히 줄어 위중증·사망자가 함께 감소하는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행의) 칼자루는 바이러스가 쥐고 있고, 지금처럼 바이러스가 퍼지기 좋게 방역이 이완되는 시기와 상황, 사람들의 행태를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