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자행한 잔혹 행위를 '제노사이드'(집단학살)라고 언급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우크라 Q&A] '제노사이드 규정' 어떤 의미인가
러시아가 이 발언에 강력히 반발하는 것은 물론 미국의 핵심 우방국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민은 형제 같은 사이라며 제노사이드라는 표현을 쓰는 데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 내에서도 아직 러시아의 행위가 제노사이드인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미 국무부는 러시아의 행위가 제노사이드에 대한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국제 변호사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힐 뿐 공식적으로 제노사이드라고 선언하지 않고 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13일(현지시간) 러시아의 행위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하지만 많은 나라 정상들은 아직 이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며 제노사이드를 둘러싼 논란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 국제법상 제노사이드 정의는
▲ 가족이나 인종을 뜻하는 그리스어 접두사 '제노스'(genos)와 살해를 뜻하는 접미사 '사이드'(-cide)를 합친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는 1940년대 초 폴란드 법률가 라파엘 렘킨이 처음 사용했다.

이 용어는 1948년 제정돼 1951년 발효된 '제노사이드 범죄 예방 협약'에 처음으로 법적으로 정의됐다.

협약에서 제노사이드는 "국가나 민족, 인종, 종교 집단을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파괴할 의도를 가진 행위"로 규정됐다.

제노사이드 행위에는 살인, 심각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위해, 출산을 막기 위한 조치, 아이들을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강제로 옮기는 것 등이 포함된다.

-- 제노사이드 사건 기소가 어려운 이유는
▲ 국제 법정에서 제노사이드에 대한 첫 유죄 판결이 나온 것은 제노사이드 협약이 채택된 뒤 50년이 지난 1998년이었다.

당시 르완다 타바 마을의 후투족 출신 시장이 1994년 투치족 등 수십만 명이 집단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 제노사이드 유죄판결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제노사이드 사건 기소가 어려운 것은 법률적 정의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제노사이드 협약은 국가·민족·인종·종교 등 4개 집단을 대상으로 한 파괴 행위에 제노사이드를 적용하도록 규정하면서도 이런 행위가 언제부터 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제노사이드 기소에서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행위의 '의도'를 입증하는 것이다.

미국 럿거스대 제노사이드와 인권 연구센터 알렉산더 힌튼 소장은 "모든 것은 정말로 '의도'라는 단어에서 시작된다"며 "집단학살 정권이나 집단학살 지도자들은 재판 서류를 남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의도가 무엇인지 구별하기는 어렵다"며 "수사관들은 명확한 의도가 드러난 문서를 찾으려 하겠지만 결국 의도는 상황과 폭력 성향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제노사이드나 전쟁범죄, 또는 반인륜범죄 혐의로 누군가를 기소한다고 해도 국제형사재판소(ICC) 같은 국제법정에서 재판이 열리려면 피고인이 구속돼야만 한다는 것도 제노사이드 처벌이 어려운 이유다.

-- 우크라이나에서 제노사이드가 일어나고 있나
▲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도시 부차에서 민간인 시신이 거리에 널려 있는 모습과 집단 매장지가 발견된 후 러시아 행위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증가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민간인을 공격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며 부차에서 집단학살이 있었다는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반격하고 있다.

많은 국제 법률전문가들은 부차나 보로단카, 마리우폴 등에서 전쟁범죄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제노사이드가 발생했는지 판단하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힌튼 소장은 조사관들이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푸틴과 러시아 관리들의 발언을 살펴볼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인들을 탈 나치화 해야 한다거나 우크라이나라는 국가 실체를 부인하는 말 등을 종합하면 특정 집단 파괴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존스홉킨스대 제노사이드 전문가인 유진 핀켈 교수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제노사이드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보가 제한돼 있고 제노사이드의 법적 정의 문제도 남아있지만 자신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는 국가 집단으로서의 우크라이나를 파괴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도'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의 발언이 처음에는 '탈 나치화'에 초점을 뒀으나 이후 '탈 우크라이나화'로 바뀌었다며 이를 우크라이나 제거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했다.

-- 많은 나라가 제노사이드라고 선언하는 것을 망설이는 이유는
▲ 전문가들은 많은 나라가 러시아의 행위를 제노사이드라고 선언하는 것을 망설이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정치라고 말한다.

힌튼 소장은 "제노사이드는 그 개념이 처음 법률적으로 공식화됐을 때부터 일종의 정치적 쟁점이었다"고 지적했다.

각국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기를 원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정치적, 경제적 우려도 종종 작용한다는 것이다.

제노사이드 협약은 제노사이드가 발생하고 있다고 믿는 국가는 이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는 1994년 클린턴 미 행정부가 르완다 문제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한 뒤 매일 수천 명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이를 제노사이드라고 선언하지 않았으며, 이 사건은 1998년에야 제노사이드로 규정되고 처벌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