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혼인에 기초한 가족만 인정하면 우리 사회 가족위기 더 심각해져"
인권위, 동성커플 등 가족형태 법적 인정 권고
남녀 간 결합이 아닌 동성 커플 등 다양한 가족형태도 법적인 가족으로 인정되도록 제도를 개선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13일 국회의장에게 성 소수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주거·의료·재산분할 등 공동체 생활 유지에 필요한 보호기능 등이 포함된 법률을 제정하도록 권고했다.

또 실재하는 다양한 가족 형태와 가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수용하고,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예방하기 위해 건강가정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조속히 심의·의결하라고 권고했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국내외에 거주하는 한국 국적 성 소수자 커플 1천56명은 헌법에 명시된 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주거권·노동권·사회보장권·건강권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차별을 겪고 있으며, 동성 커플에 대한 어떤 공적 인정도 하지 않는 것은 헌법과 국제인권법 위반이라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새롭고 다양한 가족 형태가 출현하고 그 비중이 날로 증가하지만 현행 법·제도는 여전히 전통적 가족 개념을 근거로 해 다양한 생활 공동체가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차별받는다며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유형의 생활공동체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추세가 바뀌는 점을 고려하면, 외국의 생활동반자법처럼 혼인·혈연 외의 사유로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동반자 관계 성립과 효력 및 등록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법률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인권위는 "가족정책은 인구 및 가족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제도를 정비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국가가 여전히 남녀 간 혼인과 그에 기초한 혈연관계만을 가족구성 토대로 인정하는 입장을 고수하면 우리 사회의 가족 위기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생활동반자법 제정 시 전통적 가족이 붕괴하고 가족이 담당해 온 순기능이 사라지는 등 사회가 혼란스러울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는 "앞서 법을 시행한 외국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근거가 희박하다"고 일축했다.

인권위는 "생활동반자법은 기존 결혼제도의 결함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을 제도 안으로 포섭해 사회적 안정과 통합을 증진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권위는 국회의 입법에 관한 사항은 위원회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정 사건은 각하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