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을 무대 예술로 각색할 때마다 연출가와 배우는 선택을 해야 한다.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느냐, 아니면 새롭게 해석하느냐’를 놓고.

지난 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아티움에서 개막한 창작 뮤지컬 ‘아몬드’(사진)는 원작(손원평 작가의 동명 소설)을 살리는 길을 택했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대작을 재료로 삼다 보니 이런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다. 2017년 출간된 이 소설은 90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다.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이 덕분에 제작사 라이브가 여는 창작 뮤지컬 공모전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의 눈에 들어 무대에 오르게 됐다.

아몬드는 뇌 속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알렉시티미아’(감정 표현 불능증)를 앓는 소년의 성장 과정을 다뤘다. 주인공 윤재가 주변 인물을 통해 사랑과 슬픔 등 감정을 학습하는 과정을 담았다.

책 속 윤재와 뮤지컬 속 윤재의 싱크로율이 높아 소설을 읽고 온 관객이라면 반가울 법하다. 원작의 서사뿐 아니라 대사, 지문 등도 그대로 옮겼다. 눈으로 읽은 바로 그 문장을 귀로 듣는 게 새롭다. 윤재가 감정을 배워 나가는 단계별로 다채로운 넘버가 삽입됐다. 줄거리와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숨이 찼다. 세 시간에 이르는 러닝 타임 내내 원작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마치 원작자와 ‘소설 속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 ‘소설에 나온 문장과 토씨 하나 달라선 안 된다’고 계약을 맺은 듯했다.

특히 갈등의 인과관계나 인물의 내면 묘사를 소설 속 문장을 읽는 것으로 대신한 건 무척 어색했다. 알렉시티미아 특성상 감정을 최대한 배제해야 하는 점을 감안해도 윤재의 내레이션은 지나치게 딱딱하다. 일부 부자연스러운 장면은 굳이 재현하지 않고 소설에만 남겨두는 게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윤재로 분한 문태유, 곤이를 맡은 이해준 두 남성 배우의 하모니는 인상적이었다. 감정이 없어 잔잔한 윤재의 바다가 ‘정(正)’이라면, 분노와 슬픔 따위의 감정이 과잉된 상태의 곤이가 일으키는 파도는 ‘반(反)’이다. 두 소년의 만남으로 무대를 지배하는 긴장 관계는 마침내 ‘합(合)’에 이른다. 소설보다 훨씬 극적이다. 두 배우의 연기와 목소리의 궁합이 나쁘지 않다. 무대장치의 소박함을 배우들의 연기가 채웠다. 감정을 배우면서 점차 달라지는 윤재의 표정과 목소리를 확인하는 것도 관람하는 재미 중 하나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