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에는 지난달 초 선거 직전 '대선에서 누구를 뽑을지 알아보자'라는 투표 글이 등록됐습니다. 405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윤석열 후보 지지율은 50.1%, 이재명 후보 지지율은 40.5%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2030들은 집값을 올린 현 정부를 심판하자는 취지에서 윤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본사 이전 공약에도 불구하고 산은 직원들도 같은 마음을 가졌던 것이겠지요. 윤 후보를 지지한 이들은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산은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하는 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대훈의 금융 돋보기]산은 직원들 尹 50% 지지했는데...부산 이전 강행에 '멘붕'
산은 부산이전 분위기 띄우는 지역언론들

"박형준, 시도시자 회장 자격으로 尹당선인 두 번째 만남."
"산업은행 이전만으론 안돼, +α 필요하다"

최근 부산 지역 언론들의 쏟아내는 기사 제목입니다. 산은의 부산 이전에 대한 분위기를 띄우는 기사입니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TF 설치되나'라는 설익은 내용의 인수위발 기사부터 '수출입은행도 이전해야 금융중심지 가능하다'는 제목의 사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기간이던 지난 1월 부산에서 “부산이 세계 최고의 해양도시·첨단도시로 발돋움하려면 금융 자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국회를 설득해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겨 부산·울산·경남 금융 공급의 허브로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대선 직전인 3월 4일 부산 유세 때는 “산업은행 하나 가지고는 안 되고 대형은행과 외국은행들도 부산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선 이후에도 "(부산에) 대형은행들이 버티고 있어야 지역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되기에 (산은 이전을) 공약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인수위 내 균형 발전특위에서 산은의 부산 이전을 포함한 공약의 이행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대형은행 이전은 부산 지역사회의 공공연한 숙원 사업입니다. 제조업이 죽고 제2 도시로서의 위상이 흔들리는 가운데 부산을 발전시키려면 산은과 같은 대형 정책금융기관을 유치해야 하고, 부산을 금융허브로 만들 수도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 때문에 시장이 당선인을 '만났다'는 게 지역 언론의 기삿거리가 되는 것이겠죠.

노무현 정부에서도 지역 균형발전 관점에서 금융 공기업의 지방 이전이 추진된 바 있습니다. 현재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는 주택금융공사·자산관리공사·한국거래소 등이 입주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산이 금융허브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 따르면 세계 금융도시로서 부산의 순위는 2015년 3월 27위에서 지난해 9월 33위로 하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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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이 해마다 지역 이전 이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지역사회의 요구를 지역 정치인들이 100%, 120% 받아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를 얻어야 한다는 면에서 여야 정치인 모두가 이 이슈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정치인들이 민간회사의 이전은 강제할 수 없는 반면, 특히 국책은행, 금융공기업 등에 대해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부산에 비교적 덩치가 작은 금융공공기관들이 이전했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지역 여론입니다. 왜 윤 당선인이 산은을 지목했느냐는 것에서도 '규모'가 크게 고려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당초 기업은행의 부산 지역 이전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직원 수가 1만3000명을 넘어 이전이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직원 수 3000명인 '적당한' 크기인 산업은행이 지목됐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산은의 부산 이전 논의가 수면 위에 오르자 지역 언론들은 정치인들이 '원팀'이 돼 숙원 사업이 궤도에 올랐다며 칭송하는 기사를 내놓고 있습니다. '박형준 시장과 당선인 비서실장인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구)의 콤비 활약으로 평가된다'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을 비롯해 안병길 전봉민 이주환 등 현역 부산의원들 덕에 지역경제 핵심 추진 동력을 얻게 됐다' '부산시에선 이를 두고(산은 이전과 엑스포 개최 등) 호박넝쿨 전략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내용입니다. 산은과 더불어 수출입은행 등을 '플러스알파'로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금융공기업 유치한 부산, '금융허브'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산은이 부산으로 이전하고 '플러스알파(금융 공공기관 추가 이전)'까지 이뤄진다면 부산이 아시아 금융허브인 홍콩과 싱가포르와 견주는 금융도시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서울조차 외국계 은행이 철수하는 상황'이라는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이 뼈아픕니다. 서울이 금융허브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로는 한국의 지정학적 문제와 여전히 낮은 원화의 위상, 갖가지 금융규제 등이 꼽힙니다.

금융권에선 당장은 산은이 부산으로 이전한다면 경쟁력만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큽니다. 산업은행은 산은법에 따라 설립된 국책은행으로 대규모 기업금융 업무, 대형 구조조정, 인프라 및 벤처 등 IB 투자업무를 합니다. 산은이 부산으로 이전하면 주요 고객인 대기업 본사와 멀어질뿐더러, 주요 IB 거래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산은이 주도했던 대형 딜(deal)을 다른 금융회사들이 대체할 수도 있겠죠.

부산 이전론이 확산하면서 산은 구성원들의 동요도 큽니다. 당장 서울에 본사를 둔 금융회사로 이직을 꾀하는 직원도 적지 않다는 전언입니다. 최근 은행연합회 경력직 공채에는 산은 직원들이 최종 후보로 올라갔고, 1명이 최종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각종 핀테크 사와 서울 여의도의 증권사의 경력직 채용에도 산은 직원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2017년 전주 이전 이후 직원들의 동요와 대량 이직 사태가 벌어진 국민연금의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