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팔리면 뭐하나"…밀린 車주문만 100만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계속되면서 현대자동차·기아가 국내에서 주문은 받았지만 생산하지 못한 '백오더' 물량이 지난달 기준 100만 대를 넘어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다 코로나 확산으로 중국 공장이 문을 닫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생산 지옥’에 빠진 탓이다. 주요 신차가 소비자 호응을 얻고 있지만,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서 실적도 발목이 잡힌 모습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의 국내 백오더 물량은 지난해 초 10만 대에서 올해 초 40만 대, 지난달 50만 대로 늘었다. 현대차 백오더 물량까지 합치면 100만 대 이상이 제조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대차·기아의 지난해 총 판매량 666만 대의 15%에 달한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747만 대를 팔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내놨지만,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아의 지난달 국내공장 생산차질은 2만6000대로, 목표 달성률이 82%에 그쳤다. 반도체 부족으로 1만9000대, '와이어링 하니스' 수급난으로 7000대를 생산하지 못했다. 미국, 멕시코, 슬로바키아, 인도 등 해외 공장에서도 1만4000대의 생산차질을 빚었다. 목표 달성률은 90%다. 기아는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일평균 계약대수는 늘어나는데 생산 부족으로 백오더가 증가하고 있다”며 “해외 주요 지역에서도 초과 수요가 해소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아는 우선 수출 물량보다 내수 물량을 더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글로벌 완성차 업계를 덮친 반도체 공급난은 올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올 상반기 내 서서히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올 들어서는 하반기로 회복 예상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오토포캐스트솔루션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3일까지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전 세계 자동차 생산차질은 134만 대에 이른다.

‘출고 대란’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 스포티지 하이브리드는 지금 주문하면 1년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 당장 계약해도 내년 10월이 지나야 차가 나온다는 얘기다. 카니발(8~11개월), 니로 하이브리드(11개월), K8(6~13개월), K5(5~11개월), 봉고(4~10개월) 등 대다수 모델이 비슷한 상황이다. 현대차도 GV60, GV70 전기차, 아이오닉 5, 포터 EV는 12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 모두 반도체 공급난에 허덕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 업체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픽업트럭, 고급 브랜드 등 수익성이 높은 차량 중심으로 반도체를 밀어주고 있다.

기아는 '물량 최대화' 전략을 택했다. 특정 차종이 아닌 모든 차종에 반도체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최대한 생산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도 최근 주주총회에서 차량별 반도체 최적 배분, 대체소자 개발 등을 통해 공급 물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