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의 호모파덴스] 워라밸 원한다면 '워러밸' 갖춰라
1970년 후반 영국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개념이 등장했다. 이후 1986년 미국에도 워라밸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고용노동부가 2017년 워라밸을 위해 ‘일·가정 양립과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근무 혁신 10대 제안’으로 정시퇴근, 퇴근 후 업무 연락 자제, 업무집중도 향상, 생산성 위주의 회의, 명확한 업무지시, 유연한 근무, 효율적 보고, 건전한 회식문화, 연가 사용 활성화, 관리자부터 실천 등을 발표했다. 2018년 2월 주당 법정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법정근로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한 주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같은 해 7월부터 우선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에 주당 근로시간 52시간이 적용됐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초기에는 과다한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근무시간만 단축됨에 따라 기한 내에 일을 마쳐야 하는 직원들과 근무시간을 억지로 단축해야 하는 경영진 간의 술래잡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퇴근시간인 오후 6시에 일괄적으로 모든 임직원의 컴퓨터와 사무실을 소등하기도 하고, 일부 임직원은 하던 업무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집으로 일감을 싸 들고 퇴근해 야근 수당 없는 야근을 해야 했다. 금융계열처럼 보안이 철저한 기업이나 기관에 재직 중인 근로자들은 집에서는 시스템 접속이 어려워 재택근무마저 여의치 못해 전전긍긍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가 차원의 노력으로도 쉽지 않았던 주 52시간 근로기준법 실행률이 급격히 상승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다.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재택근무가 확대됨에 따라 탄력근무제가 안착했다. 주 52시간 근무시간 이행은 물론이고 재택근무로 출퇴근 시간도 절약되니, 코로나 이전에 비해 근무시간 외에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로 인해 확보된 귀한 여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기업과 기관에서 인재를 육성하고 성과를 관리하는 데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됐다.

필자가 국제 콘퍼런스(ATD 2020 ICE)에서 발표한 ‘워러밸(Work-Learning Balance)’이 평생교육 관점에서 이슈가 됐다. 워러밸은 임직원들의 행복과 성장을 추구하는 인적자원(HR) 차원의 웰빙 개념이다. 서울대는 워러밸 진단 도구도 개발했다. 최근에는 학계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인재란 역량을 갖고 성과를 창출하는 사람을 말한다. 업무 수행을 위한 역량의 3요소는 지식, 기술, 태도다. 정보화 시대 이전에는 정보 접근이 어려워 머릿속에 많이 담고 있는 사람들이 인재로 대접받았기 때문에 암기력이 주요 핵심 역량 중 하나였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 대한민국의 입시제도나 각종 고시제도 등이 암기력에 상당 부분 의존했던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인터넷에 키워드를 검색하면 원하는 이상의 정보가 넘쳐나는 정보 홍수의 시대다. 아무리 암기력이 탁월한 인재일지라도 구글이나 네이버 등의 검색 엔진을 능가할 순 없다.

이 때문에 인재상도 바뀌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 변화에 따라서 개인이 보유한 역량(지식, 기술, 태도)의 유통기한이 짧아지고 있다. 머릿속에 담고 있는 지식의 양이 인재를 결정하기보다는, 적시에 원하는 내용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인 학습민첩성이 인재의 핵심 역량으로 대두되고 있다. 스트레칭을 꾸준히 해야 몸의 유연성이 유지되듯, 배움도 지속해서 수행해야 학습민첩성이 발현될 수 있다.

정부는 4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2주간 완화했다. 때마침 포스코를 포함한 대기업 중 일부는 전 임직원 재택근무 체제를 중단하고 대면근무 체제로 복귀하기로 했다. 워러밸부터 시작해야 워라밸의 실현이 가능하다.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코로나19로 절약한 출퇴근 시간, 야근 시간, 회식 시간 등을 워러밸의 기회로 삼는 슬기로운 직장생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