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의 호모파덴스] 새 정부에 절실한 '악마의 대변인'
1961년 미국 케네디 정부는 쿠바 카스트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자 수도 아바나 남동쪽 100㎞ 지점의 피그만 상륙작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피그만 침공은 미군 2506여단 114명이 전사하고 1200명 이상이 생포되는 쓰라린 실패로 끝났다. 쿠바는 이듬해 소련에 핵미사일 기지 건설을 요청하면서 일촉즉발의 핵전쟁 위기로 치달은 ‘쿠바사태’를 일으킨다. 케네디 대통령은 피그만 작전과 같은 집단사고의 오류를 거울삼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가동했다. 이 회의에 남동생인 법무부 장관 로버트 케네디와 대통령 고문인 테드 소런슨에게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맡겼다. 처음엔 선제공격론이 우세했지만, 회의가 거듭될수록 ‘해상봉쇄파’로 무게 중심이 기울어지면서 세계는 핵전쟁 위기를 모면했다.

1587년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인(聖人) 추대 심사 때 찬성 이유를 제시하는 신의 대변인(God’s Advocate)뿐만 아니라, 반대 이유를 주장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 생겨났다. 대다수가 찬성할지라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과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논의를 활성화하고 최적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함이다.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정부 조직 개편이 단행된다.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수립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조직을 소폭 개편해 출범했다. 수년째 기본 틀을 유지해온 현 정부 조직은 부처 간 권력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초래했다. 기획재정부는 소속 공무원 1인당 평균 248억원가량의 예산을 담당하고 배분하는 슈퍼파워 부처로 부상했으며, 정원도 예산도 적은 여성가족부는 존폐 논란마저 일고 있다.

새 정부에서는 누가 당선되든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시도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조직은 부처 간 견제와 균형을 통해 정책 조정을 수행하는 게 목적이다. 부처 간 갈등이 있다면 부처 내 갈등으로 내재화해 정부 조직 전체의 효율성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사용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RE100’이 지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화제가 됐다. 사실 RE100은 영국의 국제 비영리 기구인 더클라이밋그룹이 2014년부터 시작한 캠페인이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태양열 시설을 산촌에 지으려니 산지 훼손이 문제고, 농촌에 지으려니 농지 보전이 문제고, 어촌에 풍력단지를 지으려니 10여 개 관련 부처에 인허가를 받을 일이 문제다. 그렇다고 재생에너지 조달을 차일피일 미루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유럽이 당장 내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용어나 발음 갖고 티키타카(Tiki-taka)하는 동안 유럽과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국내 기업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이처럼 환경부, 해양수산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부처별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안일수록, 문제 해결을 위해 타 부처의 반대 논리를 철저하게 예상해 정책을 가다듬어 나가야 한다.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이나 태도를 보이는 악마의 대변인 역할과 책임이 새 정부에서 필요한 이유다. 엘리트 공무원으로 구성된 정부 조직, 글로벌 인재들로 구성된 대기업, 심지어 석학들이 포진한 대학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의사결정이 나온다. 예일대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는 “개개인의 구성원이 아무리 탁월한 역량과 경험이 있더라도, 동일한 성향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내린 의사결정의 질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성원의 응집력이 강하고, 외부의 피드백이 차단된 조직일수록 집단사고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은 커진다.

새 정부는 이해관계의 대척점에 있는 부처와의 인사 교류 및 외부 전문가의 활용을 통해 악마의 대변인을 선발하고 배치해야 한다. 이는 작위적 반대가 가진 태생적 한계점을 극복해 결과적으로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에 기여할 수 있다. 새 정부의 리더들에게 알 파치노와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