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당석인 "4·3의 아픔 치유, 상흔 돌보는 것은 우리의 책임"
"인류사 통틀어 찾기 힘든 위대한 용서와 화해"…모범적 제노사이드 해법

"평화는 만민에게 공평한 것으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며…."
제주4·3 화해·상생의 날갯짓…보수정권 대통령 당선인 첫 참석
제주4·3평화공원기념관에 우뚝 선 위령탑에 새겨진 이 글귀는 제주4·3의 정신을 바로 보여준다.

이념의 쇠사슬로 뒤엉킨 한국 현대사의 대학살 역사를 당사자인 제주도민들은 '화해와 상생'으로 풀어나가려고 한다.

'화해와 상생'의 마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영모원의 위령비문에는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라는 글귀가 새겨있다.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4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해 참배했다.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첫 참석이자 사실상 보수정권의 대통령으로서 첫 참석이다.

보수정권의 수장이 이념의 쇠사슬을 끊어내고 화해와 상생으로 나가자는 제주도민 손을 처음 잡아 준 것이나 다름없다.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이날 추념식 인사말에서 "윤석열 당선인은 추념식에 참석해 추모를 해줘 약속을 지켜주셨다.

함께 해주심에 감사드린다"면서 "인수위에서부터 제주4·3을 국정과제로 채택해주고 국민을 통합해주시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100대 국정과제로 제주4·3을 채택하시고 세 차례나 추념식에 참석해 영령을 추모하고 유족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다"며 현 정권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표했다.

윤 당선인은 추념사에서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은 4·3을 기억하는 우리의 책임이며 화해와 상생,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한민국의 몫이다"며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SNS에 올린 메시지에서 "제주는 상처가 깊었지만 이해하고자 했고, 아픔을 기억하면서도 고통을 평화와 인권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다"며 "슬픔을 딛고 일어선 유족들, 제주도민들께 추모와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번 추념식에는 추모 메시지로 대신했지만, 재임 중 2018년, 2020년, 2021년 세 차례 추념식에 참석했다.

이날 추념식에서는 현 정권의 김부겸 총리 등 관계자와 각 정당 관계자 등이 참석해 화해와 상생의 4·3 정신을 보여줬다.

8.15 광복 이후 혼란기에 발생했던 제주4·3은 역대 정부에서 제주도민들이 줄기차게 해결을 요구했지만,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다 김대중 정부 때 비로소 공론화됐다.

1999년 12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주4·3특별법)제정을 계기로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지난해 개정된 제주4·3특별법에는 '제주4ㆍ3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고 명시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0월 4·3에 대해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다.

2005년 10월에는 허준영 경찰청장이 현역 치안 총수로는 처음으로 4·3평화공원을 방문해 참배했다.

2006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 추념식에 참석했다.

2013년 8월에는 제주의 퇴직 경찰들이 모인 단체인 제주도재향경우회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손을 잡았다.

4·3 성격 규명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던 두 단체는 기자회견을 해 화해와 상생을 선언하고, 합동 참배 등을 진행했다.

2014년에는 제95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 당시 정문현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과 현창하 제주도재향경우회장이 나란히 손을 잡고 두 번째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서 화해와 상생으로 동행을 보여줬다.

김부겸 총리는 이날 추념사에서 "경우회와 유족회가 2013년 이후 매해 공동으로 추모하고 있다"며 "인류사를 통틀어 찾기 힘든 위대한 용서와 화해"라고 강조했다.

이번 추념식에 윤 당선인 참석함에 따라 대량학살(제노사이드) 관련 화해와 상생이라는 모범적인 4·3 해법이 다시 한번 국민들의 가슴에 되새겨지게 됐다.

또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국정과제 추진이 차기 정부에서도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졌다.

윤 당선인이 4·3 공약 중 대표적인 것은 가족관계 특례 신설이다.

가족관계 신설은 지난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 추진 과정에서도 거론됐지만, 법원행정처가 난색을 보이면서 삭제됐다.

이러한 가족관계 특례가 만약 신설된다면 4·3 당시 실제와 다르게 오른 가족관계를 더 수월하게 수정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윤 당선인은 또 고령 유족에 대한 요양시설과 유족회 복지센터 지원, 트라우마센터의 국립센터 승격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올해 하반기부터 5년간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희생자 보상금 지급 절차도 원활하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 4·3 기념사업과 추모제를 범국가적 문화제로 승화하겠다는 공약 등이 추진된다면 현재 정부 주관의 추념식 외에 각종 국가 지원 기념사업과 문화 행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