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액 초과하는 배상, 한국 개별 법률도 인정…배상액 상한 등 고려해야"
미국 법원의 '3배 손해배상' 명령…대법 "국내 집행 가능"
외국의 재판에서 실제 손해액을 초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명령이 나왔다면 국내 법률이 정한 손해배상액 상한과 비교해 합당한지를 따져 그대로 승인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식품수입업체 A사와 B사가 C씨를 상대로 낸 집행판결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원고 A사와 B사는 2003년께부터 한 필리핀 회사로부터 건조 망고를 독점 수입해 판매하다 2009년 이후 더는 독점 판매를 못 하게 됐다.

이들은 C씨가 독점계약을 방해하고 불공정한 경쟁 방법을 썼다면서 미국 하와이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와이주 법원의 배심원들은 A사와 B사의 손해액을 각각 20만달러와 38만1천달러로 인정했고, 판사는 손해액을 3배 증액해 배상하게 할 수 있는 현지 법에 따라 C씨가 부담해야 하는 배상액을 60만달러와 114만3천달러로 정해 선고했다.

하와이 법원 2심과 3심도 같은 판단을 내려 판결은 2016년 최종 확정됐다.

이후 A사와 B사는 이 소송 결과를 집행하기 위해 한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1심은 강제집행을 허가했으나 피고 C씨의 항소로 열린 2심은 강제집행 범위를 A사 20만달러, B사 38만1천달러로 한정했다.

하와이주의 판결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지만 한국 민사법 체계는 손해의 전보(塡補·메워서 채움)만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번 사건에서 손해 전보 범위를 넘는 배상을 명령하면 사회질서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법원은 하와이주 판결에 따라 '3배 배상'을 강제 집행하게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외국 재판에 적용된 외국 법률이 실제 손해액의 일정 배수를 자동적으로 최종 손해배상액으로 정하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외국 재판의 승인을 거부할 수는 없다"며 "우리나라의 관련 법률에서 정한 손해배상액 상한 등을 고려해 외국 재판의 승인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한국 손해배상제도가 원래 '손해가 발생하기 전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2011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실제 손해의 3배 배상을 도입한 뒤 공정거래법이나 근로관계, 지적재산권, 소비자 보호 등 영역의 개별법에도 3∼5배 손해배상 규정이 포함되도록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하와이주 판결이 손해배상의 대상으로 삼은 피고의 행위는 실제 손해액의 3배 내에서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공정거래법의 규율 영역에 속한다"며 "하와이주 판결을 승인하는 것이 우리나라 손해배상제도의 원칙이나 이념, 체계에 비춰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정도라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