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서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 '탄탄대로'…'조국 사태' 계기로 등 돌려
'정직한 분'·'국정농단 수사 적임' 상호 평가 무색하게 대선정국서 정면 충돌
文, 적폐수사 발언 맹비난…신구정권 '불안한 동거' 속 정권 이양 원활할지 주목
적폐청산 동행하다 악연으로…문대통령-윤당선인, '엇갈린 운명'
윤석열 당선인의 이름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대통령이다.

강골 검사가 순식간에 대권주자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파격 발탁'을 거듭하며 윤 총장에게 확실한 신임을 보냈던 당사자가 바로 문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모두 사법고시 출신이지만, 합격한 시기가 11년이나 차이가 나는 탓에 직접 연을 맺을 기회는 없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시기는 2012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당선인은 문 대통령이 출마했던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조작 의혹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3년 국정감사에서 '수사 과정에 검찰 수뇌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가 좌천된 윤 당선인을 눈여겨봤던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집권과 동시에 윤 당선인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며 화려하게 검찰 핵심부에 복귀시킨다.

고등검사장급이 맡아 온 서울중앙지검장의 급을 검사장급으로 내리는 동시에 차장검사급이던 윤 당선인을 승진시킨 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검찰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국정농단 사건 수사와 공소유지"라며 "그 점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당시 청와대 안팎에서는 "윗선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대쪽 같은 면모를 높이산 것"이라는 평가가 공공연하게 오갔다.

적폐청산 동행하다 악연으로…문대통령-윤당선인, '엇갈린 운명'
기수를 파괴한 인사로 영전한 윤 당선인은 2019년 7월 검찰총장의 자리에까지 오르며 탄탄대로를 달린다.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 후 고검장을 거치지 않고 총장으로 직행한 첫 사례로, 윤 당선인에 대한 문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가 거듭 확인된 대목이다.

윤 당선인 역시 문 대통령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 모습을 보였다.

윤 당선인은 지난달 공개된 정권교체행동위 인터뷰 영상에서 문 대통령에 대해 "검사로서 지켜봤을 때 정직한 분이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고 말했다.

검찰총장 임명장을 받을 때를 떠올리며 문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에 개의치 말고 엄정하게 비리를 척결해 달라고 당부했다"라고도 회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문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내정한 것을 계기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조 전 장관과 가족을 둘러싼 의혹을 두고 검찰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진행하자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논란 속에 조 전 장관이 조기 사임하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뒤로 이 같은 갈등은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추 전 장관이 라임 자산운용 로비 의혹 사건 등과 관련해 윤 당선인의 '측근 감싸기' 의혹을 제기하는 등 '추·윤 갈등'이 정국의 핵으로 부상했다.

적폐청산 동행하다 악연으로…문대통령-윤당선인, '엇갈린 운명'
여당은 '추·윤 동반사퇴론'까지 제기하며 적극적인 중재를 촉구했지만 문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추 전 장관이 윤 당선인을 총장 직무에서 배제하자 윤 당선인이 이에 반발하는 과정을 '개혁에 대한 검찰의 저항'으로 봤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이를 정치적으로 풀기보다는 징계위원회 등 절차에 따라 해결해 검찰개혁의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판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그 사이 윤 당선인의 정치적 몸값은 날로 올랐고, 순식간에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 당선인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규정하며 "(윤 당선인이)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총장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는 문 대통령이 재차 윤 당선인에게 신뢰를 보냈다는 분석과 윤 당선인의 정치 행보를 눌러 앉히기 위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엇갈렸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지난해 3월4일 윤 당선인은 총장직을 사퇴했다.

윤 당선인은 퇴임의 변을 통해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문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양측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순간이었다.

윤 당선인으로선 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연을 맺은 지 4년 만에 문 대통령과 정확히 대척점에 선 셈이었다.

서로를 향한 감정의 골은 당선 뒤 문재인 정권을 대상으로 한 적폐청산 수사를 하겠다고 시사한 윤 당선인의 인터뷰 뒤 정점으로 치달았다.

윤 당선인은 지난달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문 대통령은 다음 날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으로 몬 데 강력한 분노를 표한다"며 보기 드물게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대선이 여야 후보가 아닌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간 대결 구도로 흘렀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이 때문에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불안한 동거를 이어갈 향후 두 달 동안 정권 이양이 순조롭게 이뤄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국정의 주요 분야에 차기 정부가 잘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8일 국무회의에서도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 외교·안보에 대해 당선자 측과 잘 협력하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적폐 수사' 발언 등으로 윤 당선인과 반감이 커진 상황에서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