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7일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서며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장 시작과 함께 18% 급등하며 사상 최고가에 근접했다. 서울의 한 금융정보 전문업체에서 직원이 국제 유가 그래프를 살펴보고 있다.  김병언 기자
국제 유가가 7일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서며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장 시작과 함께 18% 급등하며 사상 최고가에 근접했다. 서울의 한 금융정보 전문업체에서 직원이 국제 유가 그래프를 살펴보고 있다. 김병언 기자
“유럽 국가들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세계 자산시장에 충격을 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의 말이다. 그는 6일(현지시간) 미 NBC방송의 한 토크쇼에 나와 “(러시아산 원유 없이) 원유 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산 에너지 제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미국이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카드다.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 보이콧’이 에너지 분야로 번지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美 "러시아산 원유 전면 수입금지"…3차 오일쇼크 '공포'

에너지 제재 카드 처음 꺼낸 미국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러시아에 대한 금융 분야 제재를 이어왔다. 하지만 러시아 석유 기업의 수출을 막거나 유럽으로 향하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등에 대한 직접 제재는 하지 않았다. 서방 국가들이 자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해 에너지 제재엔 나서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많았다. 글로벌 공급난에 오일 쇼크까지 겹치면 세계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원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는 러시아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다. 그동안 서방국의 러시아 경제 제재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 주를 이룬 이유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이 이런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제재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 및 각료들과 5일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 문제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보이콧을 에너지 분야로 확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 하원도 러시아 에너지 제재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날 민주당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러시아 원유 및 에너지 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산 수입품 관세를 올리는 방안도 저울질하고 있다.

에너지난 우려에 독일은 반대

미국 유럽에 이어 일본도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를 고려하고 있다고 7일 교도통신이 전했다. 러시아 에너지 제재가 글로벌 원유 시장 전반으로 확대될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

러시아는 매일 700만 배럴의 원유·정유제품을 수출해왔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7% 정도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난해 수입한 러시아산 원유·정유제품은 월평균 2040만 배럴을 넘는다. 미국 액체 연료 수입의 8%를 차지했다.

독일은 천연가스의 55%, 원유와 석탄의 42%를 러시아로부터 들여온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부 장관은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에너지난으로 3주 안에 철회해야 하는 제재라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금지해 독일의 에너지난이 심해지면 결국 제재를 풀게 될 것이란 뜻이다.

에너지 제재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곳은 유럽이다. 바클레이즈는 올해 유럽의 성장률 전망치를 4.1%에서 3.5%로 하향 조정하며 “유럽이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됐다”며 “세계가 스태그플레이션 쇼크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이 즉각 반대 입장을 밝힌 배경이다.

“국제 유가 배럴당 200달러” 전망도

국제 유가 지표로 꼽히는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7일 나란히 2008년 7월 이후 최고가로 급등했다. 브렌트유와 WTI는 2008년 7월 11일 장중 배럴당 147달러를 넘어서면서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조만간 이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산 에너지 제재가 가까워진 데다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마저 지연되고 있어서다. 매일 120만 배럴의 원유를 국제 시장에 공급하던 리비아도 하루 공급량을 92만 배럴로 줄였다. 내부 정치 갈등이 번지면서 유전 두 곳이 문을 닫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수출 가격을 인상했다.

두바이 투자회사 비톨그룹의 마이크 뮬러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막힐 것이란 전망이 유가에 선반영됐지만 아직 완전히 반영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시장 변동성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JP모간은 러시아산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올해 말 브렌트유가 배럴당 185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막히면 매일 500만 배럴 넘게 공급이 줄어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에너지 전문 헤지펀드인 영국 런던의 웨스트벡캐피털매니지먼트도 유가가 200달러를 넘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