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R 대신 TCR로 수요 이동하며 물류난…컨테이너 선사들 러 운항 중단
美 대러 수출통제 'FDPR' 적용 면제 대상에 한국 포함 여부 촉각
글로벌 반러 움직임엔 '신중'…사업철수·제품판매 중단 동향 주시
[우크라 침공] 글로벌 육-해상 물류차질 가시화…기업들 대책마련 부심(종합)
산업팀 = 국제사회의 대(對)러시아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기업들도 직접적인 제재 영향권에 들고 있다.

현대차 러시아 공장이 반도체 수급난 여파로 자동차 생산을 일시 중단한 가운데 향후 대러시아 제재가 구체화될 경우 추가 피해가 예상되며, 다른 기업들 역시 부품난과 운송난 등으로 현지 사업에 차질이 발생할까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특히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물류난이 이번 사태로 더 악화될 조짐을 보여 기업들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기업들은 미국의 대러시아 수출통제 조치인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적용 예외 대상에 한국이 포함될지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한미 양국이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인 가운데 논의 결과에 따라 기업들이 받을 타격 수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 "부품 공급망·물류망 차질 우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글로벌 공급망 분석센터가 2일 발간한 '글로벌 공급망 인사이트' 자료와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각각 생산하고 있다.

이외에 KT&G·팔도 등은 모스크바 인근에, 현대차·기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현지 거점은 한국 외 지역에서 완제품을 들여오거나 한국으로부터 원자재를 수입한 뒤 현지에서 생산하는 품목의 부품 소싱 등을 진행한다.

기업들은 대러시아 제재로 부품 공급망과 육·해상 물류망에 차질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현지 공장은 정상 가동 중이지만, 최근 러시아에 선박이 드나들기 어려워졌다고 들었다"면서 "해상 물류망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장은 부품 수급에 문제가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현지 생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개시된 이후 주된 육상 운송수단이던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대신 중국횡단철도(TCR)로 수요가 옮겨가며 물동량이 급증하는 등 물류난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유럽으로부터 러시아로 향하는 트럭킹(화물차 운송) 루트의 경우 공식적으로 차단되지는 않았으나 운송사 측에서 해당 트럭킹을 꺼리고 있어 물류 적체 현상까지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상운송 역시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MSC, 머스크 등 세계 1·2위 컨테이너 운항 선사들이 러시아 운항을 잠정 중단하기로 함에 따라 이미 코로나19 사태로 상당히 진행된 물류망 마비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급망 분석센터는 "현 시점에서 러시아 제재로 반도체 관련 물류 감소가 예상된다"며 "사태 변화에 따라 물류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 및 개별기업 차원의 정보 공유와 사전 정보 확인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앞서 현대차는 글로벌 물류 차질에 따른 부품 부족으로 인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을 오는 5일까지 중단한다고 밝혔다.

다만 회사 측은 러시아 제재 영향이 아니라 지난해부터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 원자재 재고 확보·공급선 다변화 추진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현재 네온(Ne), 크립톤(Kr) 등 반도체용 희귀가스 재고를 확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국내 희귀가스 수입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립톤이 48%(우크라이나 31%·러시아 17%), 네온이 28%(우크라이나 23%·러시아 5%) 수준이었다.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현재 3개월분 정도의 재고를 확보한 상태"라며 "공급선 다변화로 재고 확보에 나서는 중"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는 주요 광물을 중국, 호주, 남미 등에서 수급해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 영향권에 들 수 있다고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기차 및 배터리 공급망은 광물 등 원자재→소재 업체→배터리 업체→완성차 업체로 구성되는데 단계별로 수년 단위의 장기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당장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시기에 이번 전쟁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가 나온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대표적인 배터리 원자재 광물인 니켈의 톤(t)당 가격은 이날 기준 2만5천450달러다.

전년 평균보다 약 38%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은 결국 배터리와 전기차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불안정한 정세와 불확실성으로 인한 간접·잠재적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공급망 다변화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의 경우도 무연탄 등 공급난 가능성에 대비해 대체원료 확보, 수입선 다변화 등을 검토 중이다.

[우크라 침공] 글로벌 육-해상 물류차질 가시화…기업들 대책마련 부심(종합)
◇ FDPR 면제 대상에 한국 포함될까 촉각
국내 기업들은 FDPR 면제 대상에 한국이 포함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은 대러시아 제재에서 미국 밖의 외국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소프트웨어, 설계를 사용했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FDPR를 적용했다.

유럽연합(EU) 27개국과 호주,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영국 등 32개국은 미국에 준하는 독자 제재를 하기로 해 이 규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한국 기업은 예외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FDPR 적용 대상인 제품을 러시아로 수출하려면 미국 상무부를 거쳐야 한다.

특히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 일부 완성품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지가 관건이다.

완성품과 민수품은 수출 통제 대상이 아니지만, 스마트폰에는 통신용 칩이 들어가 군사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제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이 지난해 기준 약 30%로 1위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미국은 2013년 이란인들이 외부세계와 더 자유롭게 소통할 길을 열기 위해 이란에 대한 통신기기 판매 제재를 완화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이란 사례를 들어 이번에도 스마트폰이 수출 제재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 한국에서 모듈을 수출하면 러시아 현지 공장에서 조립해 생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모듈 수출이 가능한지도 관심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 규제 항목에 '그레이 에어리어'(Grey area·애매한 영역)가 많다"면서 "정부가 한미 협의 때 이런 부분을 명확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국과의 협의를 앞두고 멕시코를 방문 중인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FDPR 면제에 대한 부분은 고위급 대면 협의를 통해 최대한 빨리 양국이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 침공] 글로벌 육-해상 물류차질 가시화…기업들 대책마련 부심(종합)
◇ 기업들, 글로벌 반러 움직임에 '신중'
이런 가운데 애플, 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러시아 내 제품 판매를 중단하거나 사업 철수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아직 별도의 조치를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내부적으로 대응 기조를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의 대척점에 서 있는 미국 기업들과 달리 러시아 시장에 공을 들여온 국내 기업들은 이번 사태 이후 현지 사업이 받을 타격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관련 대응에 극도로 예민한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스마트폰 및 TV 시장에서 점유율 1위 사업자이며, 세탁기·냉장고 등 생활가전 분야에서는 LG전자와 점유율 1위를 다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에서 계속 장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민감한 문제"라며 "최근 일련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우리가 러시아에서 팔 수 있는 물품까지 굳이 솔선수범해서 팔지 않을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