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어둡고 우울한 '탐정' 배트맨…영화 '더 배트맨'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범죄가 들끓는 고담시의 다크 히어로가 된 브루스 웨인과 그를 돕는 집사 알프레드, 적인지 친구인지 알쏭달쏭한 캣우먼. 얼굴 절반을 가린 검은 마스크와 망토, 슈퍼카 배트모빌까지.
1939년 처음 나온 DC 코믹스의 배트맨은 팬이 아닌 사람도 대략적인 서사와 캐릭터 특징을 알고 있을 정도로 매우 친숙한 히어로다.

무려 82년 동안 만화책, 애니메이션, TV 시리즈 그리고 수십편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매체에 등장했다.

맷 리브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 '더 배트맨'은 자칫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배트맨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영웅이자 탐정으로 그려 차별화를 꾀했다.

비교적 최근 나온 팀 버튼 감독과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작품과는 달리 억만장자인 브루스 웨인으로 살 때조차 밝은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복수심에 떨다가 밤이면 거리로 나가 범죄자들을 해치우고, 악당과 영웅 사이에 서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수수께끼 연쇄살인 사건을 직접 나서 추리하고 범인을 잡으려 하기도 한다.

리브스 감독은 "배트맨은 원래 탐정이었다.

그래서 그 부분으로 회귀하는 것은 DC 슈퍼히어로의 판타지적인 측면은 벗겨내고, 여전히 포부가 있는 주인공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역사상 가장 어둡고 우울한 '탐정' 배트맨…영화 '더 배트맨'
밤이면 배트맨으로 변신하는 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 분)은 지난 2년간 자신을 "복수"라고 칭하며 범법자들을 응징하고 살아왔다.

낮이면 구중궁궐 같은 집에 처박혀 있고, 아버지가 남긴 회사의 경영이나 유산에는 별 관심도 없다.

그러다 고담시 시장 선거를 앞두고 재선에 도전한 현 시장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얼굴을 가린 범인 리들러(폴 다노)는 사건 현장에 단서를 남겨둔 상태. 배트맨은 단서를 바탕으로 고담시에 얽힌 비밀과 살인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사라진 친구를 찾으려는 캣우먼(조이 크라비츠)을 만나 파트너가 된다.

두 사람은 고담 최대 마피아 조직의 두목 팔코네(존 터투로)와 부하 펭귄(콜린 패럴)이 운영하는 클럽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공조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정치인이나 검사 등 엘리트를 노린 살인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그때마다 리들러는 수수께끼를 남긴다.

사건이 지속되면서 배트맨은 리들러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도 마주하게 된다.

부모님에 대한 복수냐, 고담시 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한 정의 구현이냐를 두고 고뇌에 빠진 배트맨.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역사상 가장 어둡고 우울한 '탐정' 배트맨…영화 '더 배트맨'
히어로물에 추리극을 합한 듯한 '더 배트맨'은 스토리보다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한층 더 어두워진 배트맨뿐만 아니라 고담이라는 장소 역시 실제로 있을 것 같은 디스토피아로 묘사돼 공포감을 더한다.

시종 어둡게 표현된 화면이나 음습한 도시 곳곳은 극의 미스터리함과 캐릭터의 요동치는 내면을 반영한 듯하다.

배트맨을 탐정이자 영웅 캐릭터로 그린 것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전지전능한 히어로가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인간으로서 고뇌하기도, 폭주하기도 하는 그는 확실히 다른 히어로들과는 달라 보인다.

배트맨의 새로운 얼굴이 된 패틴슨의 호연이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무게를 잡느라 오락적 요소를 놓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히어로 영화를 보는 관객이 기대하는 '재미'는 거의 없어 범죄 영화나 추리 영화에 가깝게 느껴진다.

무자비한 맨몸 결투 장면이나 자동차 추격전은 타격감은 넘치지만,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본 액션이라 관객을 만족시키기엔 충분치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빌런으로 나오는 리들러나 펭귄 등의 매력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

특히 영웅심리에 도취해 살인을 거듭하는 리들러는 사회에서 도태한 부적응자로, 찌질한 면모만 부각됐다.

직전 배트맨 시리즈 '다크 나이트'의 악당 조커와 비교하면 관객을 흡인하는 힘이 다소 떨어져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1일 개봉. 상영시간 176분. 15세 관람가.

역사상 가장 어둡고 우울한 '탐정' 배트맨…영화 '더 배트맨'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