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태조사 보고서…"예방적 코호트 지양하고 면회·외출 제한 완화해야"
인권위 "노인요양시설 '코호트 격리', 입소·종사자 인권침해"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한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로 인해 노인요양시설 입소자와 종사자의 인권이 침해됐다는 지적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기됐다.

27일 인권위에 따르면 인권위는 최근 발간한 '코로나19 관련 노인요양시설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 보고서를 통해 인권위는 정부의 방역 조치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더라도 신체적 자유 등을 지나치게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어서 향후 방역 당국의 거리두기 완화 결정 등에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은다.

보고서에 따르면 감염병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가 시행한 코호트 격리와 외출 및 면회 제한 조치 등으로 인해 노인요양시설 입소자와 종사자는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1월 5일∼12월 15일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운영되는 노인요양시설 60곳의 종사자(요양보호사) 125명과 입소자 28명 등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입소자 5명 중 1명(21.4%)은 코로나19 발생이나 코호트 격리 전보다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시설은 코호트 격리 경험 시설 19곳과 예방적 코호트 격리 경험시설 29곳, 미격리 시설 12곳 등이다.

예방적 코호트 격리 경험시설은 시설 내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감염 확산 가능성을 막기 위해 격리를 시행한 곳이다.

이들 시설에서는 종사자도 입소자와 함께 같은 시설에 격리되면서 강화된 노동강도 등으로 코로나19 관련 업무 스트레스와 불안 수준이 높아지는 등 신체·정신적 건강 악화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 "노인요양시설 '코호트 격리', 입소·종사자 인권침해"
격리를 겪은 시설의 종사자 26.0%는 코호트 격리 전보다 정신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고 답했고, 신체적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는 응답도 18.0%였다.

종사자의 18.4%는 코로나19 발생 전보다 입소자가 모욕적인 비난이나 욕설, 고함 등 문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답했다.

또 종사자들은 주 1∼2회에 달하는 잦은 유전자증폭(PCR) 검사로 고통받았고, 방역을 이유로 일상생활 동선을 시설에 보고하는 등 사생활 침해도 겪어야 했다.

격리 시설의 입소자·종사자는 공통적으로 가족과 만나지 못하는 상실감과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높은 우려감을 드러냈다.

코로나19 발생 후인 2020년 1월부터 작년 9월까지 코호트 격리를 한 노인요양시설은 약 446개로, 지난해 기준 전체 노인요양시설 3천844곳의 약 11.6%에 해당한다.

연구진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시기에 노인요양시설을 대상으로 한 코호트 격리 같은 방역 조치가 입소자와 종사자의 인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격리 조치의 실효성도 뚜렷하지 않아 인권·법률적 측면에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연구진은 "일부 지역이나 시설은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예방적 코호트를 실시해 인권 측면에서 논란이 됐다"며 "종사자의 사생활 침해, 외출 및 면회 제한으로 인한 입소자의 정신적 건강 악화 등 인권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방적 코호트 격리를 하지 않도록 지침에 명시하고 불가피한 코호트 격리 시 규모를 최소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입소자의 면회·외출·외박 제한을 완화하고 정서적 지원을 강화해 건강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기적으로는 노인요양시설 같은 집단 시설보다는 지역사회 거주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돌봄 방식이 변화하고, 입소자 수 대비 종사자 수 기준을 강화해 업무 과중을 줄여야 한다는 제안도 제시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