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박영철 교수 저서 '한자의 재구성'도 나와
일본 한자학 권위자가 쓴 한자사전 '상용자해' 번역 출간
슬플 '애'(哀)와 옷 길 '원'(袁), 쇠할 '쇠'(衰)는 닮은 한자다.

획 하나를 넣고 빼면 같은 글자가 된다.

갑골문과 한자학 권위자로 알려진 일본 학자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1910∼2006)는 세 글자가 모두 장례와 연관됐다고 주장한다.

슬플 '애'는 사자(死者) 옷깃 속에 축문을 두는 그릇을 넣어 혼을 불러들이는 의례를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또 옷 길 '원'은 사자 옷깃 언저리에 영력이 있는 옥을 놓고 사자가 사후 세계로 떠나는 것을 전송하는 의례, 쇠할 '쇠'는 옷깃 근처에 상장(喪章·애도의 뜻을 나타내는 표)을 붙여 사자의 부정을 씻는 의례가 각각 반영된 글자라고 해설한다.

도서출판 길이 펴낸 '상용자해'(常用字解)는 시라카와 시즈카의 한자 3부작 '자통'(字統), '자훈'(字訓), '자통'(字通)을 대중용으로 압축한 사전이다.

일본에서 자주 쓰는 상용한자 중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 글자 일부를 제외한 2천130여 자를 한글 자음 순으로 배치했다.

첫 글자는 더할 '가'(加), 마지막 글자는 물을 '힐'(詰)이다.

'가'는 쟁기 같은 농기구를 정화하는 의례를 말하고, '힐'은 기도의 효과를 다그쳐 찾는 행위를 의미한다는 것이 저자 생각이다.

교토 북쪽 후쿠이(福井)현 출신인 시라카와는 젊은 시절 오사카에서 근무하며 한문 서적을 접했다.

리쓰메이칸대를 졸업하고 모교 교수가 됐다.

박사학위는 교토대에서 받았다.

퇴직 이후에도 '문자강화'(文字講話)를 주제로 강연 활동을 했다.

그는 한자의 세 요소인 형태, 음, 뜻 중 형태에 특히 주목했다.

상용자해 서문에서 "한자를 알려면 형태가 의미하는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며 "3천300년 전 한자가 성립했던 당시의 종교적 관념에 기초한 의례 본질이 그대로 문자 구조에 담겼다"고 강조한다.

역자인 박영철 군산대 교수는 시라카와 시즈카 문자학의 요체를 '고대 문자를 풀이하려면 글자가 만들어진 시기의 의식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로 요약한다.

그는 "시라카와의 한자 연구서는 기존의 위압적인 한자 암기 서적이 아니라 한자 원리와 체계와 정신을 꿰뚫은 완벽한 안내서이자 2천 년의 패러다임을 바꾼 새로운 사전"이라고 평가한다.

일본 한자학 권위자가 쓴 한자사전 '상용자해' 번역 출간
박 교수는 상용자해 번역 과정에서 떠오른 단상을 모은 책 '한자의 재구성'을 같은 출판사를 통해 출간했다.

그는 한나라 때 학자 허신(許愼)이 편찬한 한자 해설서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얽매인 경직된 해석을 비판하면서 "동아시아 문화권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문자에 대한 절실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상용자해 = 1천248쪽. 8만원.
▲ 한자의 재구성 = 390쪽. 3만3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