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원전이 향후 60여 년 동안 주력 기저 전원으로 충분히 활용돼야 한다”며 탈원전 정책 수정을 시사했다. 건설이 중단되거나 지연된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를 빨리 가동할 수 있게 서둘러 점검해달라고 당부했다. 5년 내내 전문가 의견과 여론을 무시하고 탈원전 폭주를 거듭하던 정권의 갑작스러운 정책 급선회다. 이유야 어쨌든 뒤늦게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점에서 평가해줄 만하다.

청와대는 ‘탈원전 정책 선회’란 해석에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 발언은 탈원전 오류를 ‘커밍아웃’한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취임 직후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며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 뒤 탈원전 행보는 국민이 기억하는 그대로다. 신규 원전 6기 건설계획을 백지화하고, 고리 1호기 등 원전 14기 수명 연장을 중단시켰다. 멀쩡한 월성 원전1호기도 경제성 평가 데이터를 조작해 가동 중단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5년 내내 탈원전 폭주가 남긴 상처는 깊고 크다. 50여 년 쌓아올린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생태계가 무너졌고, 에너지 공기업들은 줄줄이 대규모 적자를 냈다. ‘우량 공기업’의 대표주자였던 한전이 탈원전에 앞장서다 적자로 돌아서 작년 약 6조원에 이어 올해는 창립 이래 최대인 10조원 손실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등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탈원전 정책의 근거 기반조차 사라져 버렸다. 전력 생산단가가 ㎾h당 245원인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비중을 늘리고, ㎾h당 54원인 원전을 줄이는 어불성설을 여태껏 고집한 것이다.

특히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이 원전 비중 축소 방침을 번복하고 대규모 원전 투자에 다시 나서고, 중국도 원전 150기 추가 건설 등의 ‘원전 굴기’에 착수하는 등 주요국들의 원전 투자 경쟁도 현 정부에 큰 부담이 됐을 것이다.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 등 주요 에너지 공기업 경영자들이 지난해 말부터 기존 탈원전 정책과 궤를 달리하는 발언들을 잇따라 내놓은 것도 이런 변화 추세를 감안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의 탈원전 선회는 만시지탄이다. 더 이상 “신규 원전 건설 중단,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금지 등을 2084년까지 장기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과감하게 바로잡고 가는 게 정답이다. 아울러 정부가 그동안 오기로 밀어붙인 친(親)노조-반(反)기업 정책과 규제 위주 부동산정책, 대중 굴욕 및 대미 갈등 외교, 퍼주기 재정정책 등으로 온갖 문제와 갈등을 양산한 데 대해서도 진정성 있게 반성하기 바란다. 그것이 힘겹게 살아가는 국민과 다음 정부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