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소멸시효 기준점 2012년으로 잡아 연달아 원고 패소 판결
일본기업 상대 '강제동원 피해' 손배소 잇달아 기각(종합)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연이어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6단독 이백규 판사는 23일 강제노역 피해자 김한수(104) 할아버지가 미쓰비시중공업을, 고(故) 박모씨 유족이 쿠마가이구미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각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유족 측 대리인단에 따르면 강제노역 피해자 대부분은 1920∼1930년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일을 했다.

김 할아버지는 1944년 나가사키로 끌려갔다가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왔고, 박씨는 강제동원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9년 4월 강제노역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한 사람당 1억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부가 따로 판결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판결과 마찬가지로 소멸시효가 완성돼 원고들의 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 권리는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 혹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와 가해자를 피해자가 안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앞서 강제노역 피해자들 4명은 2005년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하급심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되면서 2018년 재상고심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에 따라 일선 법원에서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 계산 기준을 확정판결이 난 2018년이 아닌 파기환송된 2012년으로 보고 원고들의 청구권이 만료됐다고 판단 내리는 것이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도 사망한 강제노역 피해자 민모씨의 유족 5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하면서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2018년 12월 광주고법은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2018년 10월을 소멸시효 기준점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 이후로도 일선 법원에서 아예 다른 판단을 내리거나 소멸시효를 두고 판단이 엇갈리는 만큼 결국 다시 대법원이 소멸시효와 관련해 최종 판단할 때까지 피해자들의 혼란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리인단은 이날 재판을 마친 뒤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까지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가 법적으로 정리가 안 되어 있었다"며 "오늘 판결이 많이 아쉽다"고 밝혔다.

대리인단은 피해 당사자들과 협의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김 할아버지는 104세의 고령으로 거동이 어려운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19년 4월 소 제기 당시 "같은 인간으로 왜 그들(일제)한테 끌려가서 개나 돼지 대우도 못 받는 인간으로 살아야 했나, 이게 참 대단히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