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韓·中 관계 풀 열쇠 '600년 역사'서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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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의로운 민족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옥창준 옮김 / 너머북스
228쪽│2만원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옥창준 옮김 / 너머북스
228쪽│2만원
이웃 복(福)도 지지리 없다. 덩치를 앞세운 근린(近隣)은 위압적일 뿐 아니라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다. 호시탐탐 주인 행세까지 하려 든다. 떼버릴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참고 살 수밖에…. 그러면서 많이 닮아갔다. 서로 선망하고 원망하면서 영향을 주고받았다. 한·중 관계 얘기다.
《제국과 의로운 민족》은 고려말 명나라와의 접촉 이후 진행된 600년간의 한·중 관계사를 되짚어 본 책이다. 미국 예일대에서 중국사를 가르치는 저자가 2017년 하버드대에서 행한 ‘라이샤워 강연’의 내용을 담았다.
유사 이래 한반도에 존재했던 수많은 나라들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가장 오래된 이웃’인 중국과 한국은 유교를 비롯한 사고 체계와 한자라는 공통 문어의 사용 등 외부인이 볼 때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중국에 대해 단 한 번도 독자성을 잃지 않았다. 중국에 편입된 티베트, 몽골, 중앙아시아와 중국 남서부의 여러 나라와는 다른 경로를 걸었다.
한나라 일부 시기와 원 간섭기를 제외하면 한반도는 중국의 직접적인 정치적 지배에서 자유로웠다. 중국은 한반도를 지배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한반도에 정착한 중국인도 매우 적었다. 한반도인들은 중국과 다른 뚜렷한 정체성을 형성했다.
중국인은 자기 만족적 체면치레에 집착했다. 전통적인 천하관, 유교적 위계질서에 따라 주변국이 말로든 행동으로든 중국 제국에 복종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른바 제국질서는 주변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펼쳐졌다. 종속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중국 바깥 세계의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술과 의복, 음식을 접하고 무역을 통해 풍요로워지는 기회로 비쳤다.
사대(事大)정책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은 명나라의 호의가 필요했기에 명에 사대했다. 사대의 논리를 통해 조선 지도자들은 한반도에서 하는 일을 정당화했고, 명의 한반도를 향한 간섭을 막았다. 청이 들어선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조선이 명나라 숭정제를 기리는 만동묘를 건립하며 청의 종주권을 건드렸지만, 형식상 청의 모범적인 신하국의 형태를 취하는 한 문젯거리가 될 것은 없었다.
한반도는 분명히 중국의 경계 밖에 있었지만, 중국은 항상 한반도를 영향권 아래 두고 싶어 했다.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종주권이 더는 유지될 수 없게 되자 위안스카이는 청과 조선의 관계를 유럽 국가와 식민지의 관계로 대체하길 원했다. 1934년 일기장에 “한과 당 왕조의 일부였던 대만과 한반도를 되찾자”고 썼던 장제스는 카이로 회의 직전 루스벨트를 만나 한반도를 중국과 미국의 보호를 받는 반(半)독립 상태에 두자고 제안했다. 마오쩌둥은 ‘동생’이라고 부르던 북한과 형제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김일성의 남침 지원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당연히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편할 수만은 없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부정적이었던 김일성은 “마오쩌둥은 흐루쇼프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이에 맞서 중국의 홍위병들은 1만 명 이상의 조선족을 수용소에 가뒀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상대방의 이미지도 요동쳤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은 개혁개방을 추구하는 중국을 매력적인 협력 상대로 바라봤다. 한반도 분단 해결에 도움을 줄 것으로도 생각했다. 중국에 대한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한국의 자금과 기술은 중국의 현대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반대급부로 중국에서 한국 상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한국 TV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북한의 핵 개발은 북·중 관계는 물론 한·중 관계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의 체면을 구기고, 북·중 대립을 촉발하는 요인이었지만 2010년대에 들어 중국은 이를 못 본 체했다. 중국의 태도 변화에 한국의 젊은 층은 중국이 북한의 공격성을 부추기고 한반도의 분단 상태가 지속되길 원한다고 생각했다. 중국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은 급속하게 사그라들었다.
책은 시종일관 위압적이고 팽창적인 강국 중국 옆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여준다. 한·중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해진 오늘, 중국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기 위해선 중국의 변함없는 본질부터 직시해야 한다는 책의 기저에 깔린 메시지는 시의적절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제국과 의로운 민족》은 고려말 명나라와의 접촉 이후 진행된 600년간의 한·중 관계사를 되짚어 본 책이다. 미국 예일대에서 중국사를 가르치는 저자가 2017년 하버드대에서 행한 ‘라이샤워 강연’의 내용을 담았다.
유사 이래 한반도에 존재했던 수많은 나라들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가장 오래된 이웃’인 중국과 한국은 유교를 비롯한 사고 체계와 한자라는 공통 문어의 사용 등 외부인이 볼 때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중국에 대해 단 한 번도 독자성을 잃지 않았다. 중국에 편입된 티베트, 몽골, 중앙아시아와 중국 남서부의 여러 나라와는 다른 경로를 걸었다.
한나라 일부 시기와 원 간섭기를 제외하면 한반도는 중국의 직접적인 정치적 지배에서 자유로웠다. 중국은 한반도를 지배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한반도에 정착한 중국인도 매우 적었다. 한반도인들은 중국과 다른 뚜렷한 정체성을 형성했다.
중국인은 자기 만족적 체면치레에 집착했다. 전통적인 천하관, 유교적 위계질서에 따라 주변국이 말로든 행동으로든 중국 제국에 복종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른바 제국질서는 주변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펼쳐졌다. 종속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중국 바깥 세계의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술과 의복, 음식을 접하고 무역을 통해 풍요로워지는 기회로 비쳤다.
사대(事大)정책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은 명나라의 호의가 필요했기에 명에 사대했다. 사대의 논리를 통해 조선 지도자들은 한반도에서 하는 일을 정당화했고, 명의 한반도를 향한 간섭을 막았다. 청이 들어선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조선이 명나라 숭정제를 기리는 만동묘를 건립하며 청의 종주권을 건드렸지만, 형식상 청의 모범적인 신하국의 형태를 취하는 한 문젯거리가 될 것은 없었다.
한반도는 분명히 중국의 경계 밖에 있었지만, 중국은 항상 한반도를 영향권 아래 두고 싶어 했다.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종주권이 더는 유지될 수 없게 되자 위안스카이는 청과 조선의 관계를 유럽 국가와 식민지의 관계로 대체하길 원했다. 1934년 일기장에 “한과 당 왕조의 일부였던 대만과 한반도를 되찾자”고 썼던 장제스는 카이로 회의 직전 루스벨트를 만나 한반도를 중국과 미국의 보호를 받는 반(半)독립 상태에 두자고 제안했다. 마오쩌둥은 ‘동생’이라고 부르던 북한과 형제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김일성의 남침 지원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당연히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편할 수만은 없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부정적이었던 김일성은 “마오쩌둥은 흐루쇼프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이에 맞서 중국의 홍위병들은 1만 명 이상의 조선족을 수용소에 가뒀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상대방의 이미지도 요동쳤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은 개혁개방을 추구하는 중국을 매력적인 협력 상대로 바라봤다. 한반도 분단 해결에 도움을 줄 것으로도 생각했다. 중국에 대한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한국의 자금과 기술은 중국의 현대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반대급부로 중국에서 한국 상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한국 TV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북한의 핵 개발은 북·중 관계는 물론 한·중 관계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의 체면을 구기고, 북·중 대립을 촉발하는 요인이었지만 2010년대에 들어 중국은 이를 못 본 체했다. 중국의 태도 변화에 한국의 젊은 층은 중국이 북한의 공격성을 부추기고 한반도의 분단 상태가 지속되길 원한다고 생각했다. 중국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은 급속하게 사그라들었다.
책은 시종일관 위압적이고 팽창적인 강국 중국 옆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여준다. 한·중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해진 오늘, 중국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기 위해선 중국의 변함없는 본질부터 직시해야 한다는 책의 기저에 깔린 메시지는 시의적절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