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밝히지 않고 거액 기부 줄줄이, 한파마저 녹인 따뜻한 선행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펼친 '희망 2022 나눔 캠페인'이 목표액을 크게 웃도는 모금액을 달성하며 마무리됐다.

한 번에 거액을 쾌척한 기업·법인 및 단체와 한 푼 두 푼 알뜰하게 모은 쌈짓돈을 꺼낸 도민들의 나눔이 한데 모여 사랑의 온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어느 때보다 따뜻한 전북의 겨울을 만든 기부자 중에는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남몰래 선행을 실천한 이들도 있었다.

한파마저 녹인 따뜻한 사랑을 베푼 '얼굴 없는 천사' 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나눔동행] '당신들 덕분에'…사랑의 온도 덥힌 얼굴없는 천사들
◇ 그의 이름은 '김달봉'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그의 이름이 지역에 알려진 것은 2016년 6월이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을 찾은 이 남성은 "부안지역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5천만원이 든 종이가방을 건넸다.

기부금을 건네받은 직원이 이름을 묻자 "김달봉이라고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는 홀연히 사무실을 떠났다.

이 남성은 이후로도 줄곧 5천만원씩 기부하다가 2019년에는 1억2천만원을 전달했다.

가장 최근 기부는 조금 색달랐다.

지난해 12월 3일 한 남성이 테이프로 단단히 동여맨 검은 봉투가 안에 있는 종이가방을 들고 부안군청을 찾았다.

이 남성은 "김달봉씨 대리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어려운 이웃에게 돌아갔으면 한다"며 가방을 두고 곧 모습을 감췄다.

가방 안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현금 1억2천만원이 들어 있었다.

어느덧 기부액이 7억원을 넘어선 '김달봉' 씨는 1억원 이상을 기부하거나 기부를 약정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사랑의열매 관계자는 "'김달봉' 씨는 절대 자신의 얼굴이나 연령대를 밝히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분"이라며 "끝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기부를 이어가는 게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눔동행] '당신들 덕분에'…사랑의 온도 덥힌 얼굴없는 천사들
◇ "아버지 고향은 삼계면"…임실군 거액 기부자
지난달 21일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 계좌에 4억3천만원이라는 거액이 찍혔다.

입금자 칸에는 '임실 기부'라는 다소 애매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기부자는 임실군과 협의해 모금회에 기부를 결정했다고 했다.

조건은 저소득층 1천268가정에 5개월간 꾸준히 20만∼40만원을 지원해달라는 것.
이때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달라"는 당부도 남겼다고 한다.

이 기부자는 지난해 1월에도 "아동 학대 문제에 대해 안타까움이 크다"며 3억7천만원을 한 번에 내놨다.

이때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심지어 사진도 남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당시 기탁된 거액의 성금은 임실에 거주하는 조손가정과 한부모가정, 차상위계층 등 1천182가구에 넉넉하게 돌아갔다.

유독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이 기부자에 대해 알려진 것은 자신이 밝힌 "아버지 고향은 임실군 삼계면"이 전부이다.

[#나눔동행] '당신들 덕분에'…사랑의 온도 덥힌 얼굴없는 천사들
◇ '올해도 오셨네요'…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
연말마다 어김없이 주민센터 근처에 성금을 두고 가는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우리 곁에 찾아왔다.

이번에는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쪽지와 함께 7천9만4천960원이 든 상자를 남겼다.

얼굴 없는 천사는 도내 익명 기부자 중 가장 오랫동안 나눔을 이어왔다.

2000년 4월 초등학교 3학년쯤 되는 남학생이 노송동주민센터를 찾아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58만4천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전달했다.

이 소년은 "어떤 아저씨가 부탁했어요"라며 얼굴 없는 천사의 등장을 알렸다.

이후로도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천사의 따뜻한 베풂이 이어졌다.

2019년에는 주민센터 인근에 두고 간 성금 6천여만원이 도난당했다가 회수되는 사건이 벌어졌으나 나눔은 계속됐다.

가장 최근까지 누적 성금액은 8억872만8천110원에 달한다.

전주시는 노송동 일대를 '천사의 길'로 조성하고 기념비를 세워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을 기리고 있다.

[#나눔동행] '당신들 덕분에'…사랑의 온도 덥힌 얼굴없는 천사들
◇ "평생 모은 돈 저는 쓸 일 없어요"
앞선 익명의 기부자들처럼 큰 금액은 아니지만, 한 할머니의 선행은 우리들 마음속에 큰 울림을 줬다.

2018년 익산에 사는 이 할머니는 자신을 돌봐주는 재가복지센터 요양보호사를 통해 사랑의열매에 전화를 걸어 방문을 요청했다.

다섯 평 남짓한 허름한 방에 누워있는 할머니는 거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까지 질곡의 세월을 견딘 고령의 할머니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분이었다.

최근에는 평생의 반려자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할머니는 자신을 찾아온 사랑의열매 직원에게 "난 가족도 없고 돈을 쓸 일이 없다"며 자신이 평생 모은 2천만원을 건넸다.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전했다.

사랑의열매 관계자는 "몇 년 전 일이지만, 그때 그 할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며 "누구보다 가장 큰 나눔을 실천한 할머니는 절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셨다"고 그때를 돌이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