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파트와 뭐가 다르지?…1년 만에 지어 90년 버틴 美빌딩[강영연의 뉴욕부동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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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뉴욕의 랜드마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뉴욕의 랜드마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미국의 각주는 저마다의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부의 따뜻한 휴양지로 유명한 플로리다는 '선샤인 스테이트'로 불립니다. 텍사스는 '론스타 스테이트', 뉴저지는 '가든 스테이트'입니다. 미국의 중심, 뉴욕주는 무엇으로 불릴까요. 바로 '엠파이어 스테이트(Empire State)' 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이름부터 뉴욕을 대표하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많은 초고층 건물이 생겼지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맨해튼 스카이 라인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너무 높아서 가까이서 보면 전체를 보기 힘들고 조금을 멀리서 보여야 그 높이와 모양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데요.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 울워스 고딕 양식의 건물에 뾰족한 탑이 눈에 띄는 건물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알고 보면 한국과 굉장히 가까운 건물인데요. 맨해튼 34번가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코리아타운(33번가)과 아주 가깝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1년 완공됐습니다. 전체 층수는 102층, 높이는 381m에 달합니다. 1950년 추가로 설치된 탑을 포함하면 총 높이는 448m에 달합니다. 1971년 세계무역센터가 지어질 때까지 40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왕좌를 유지해왔습니다. 86층과 102층에는 전망대가 있는데요. 지금도 뉴욕을 찾는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는 관광 명소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지어지던 1920년대는 미국의 건설 붐이 한창이었습니다. 1871년 대화재로 시카고가 완전히 파괴되면서 재건 작업이 시작됐고, 이것이 건설붐의 시작이었습니다. 특히 한정된 토지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초고층 건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습니다. 성공한 사업가였던 제너럴 모터스의 설립자인 존 래스콥은 이 경쟁에서 승자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당시 미국 경제는 엄청난 호황이었고, 뉴욕 맨해튼 5번가는 지금과 같이 화려한 모습이었습니다. 명품 매장도 잇따라 들어섰죠. 당시 뉴욕 상류층이 모이는 부와 화려함,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이 있었습니다.
래스콥은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호텔의 상징성을 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땅'만 원했습니다. 래스콥은 1600만 달러에 호텔을 매수했습니다. 이때 갑자기 1929년 블랙프라이데이로 미국 경제가 타격을 받으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래스콥은 운 좋게 대출을 받았고, 예정대로 건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호텔을 철거했습니다.
돈을 빌렸지만 이자 상환에 대한 부담으로 공사를 빨리 진행해야 했습니다. 목표는 18개월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 맨해튼에서 크라이슬러의 창업자인 월터 크라이슬러 역시 초고층 빌딩을 짓고 있었는데요. 이것보다 높게 지어야 했습니다. 래스콥은 계속해서 크라이슬러의 계획을 확인하고, 무너지지 않고 지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0년 3월 17일 공사를 시작했고, 1931년 5월 1일에 개장했습니다. 1년 45일 만에 100층이 넘는 고층 빌딩을 지은 겁니다. 하루에 2미터씩, 한 달에 30미터씩 건물이 올라간 셈입니다.
현재의 기술로도 쉽지 않은 초고층 건물을 1930년대에 이렇게 빨리 지을 수 있었을까요. 먼저 지질학적으로 이점이 있습니다. 센트럴파크를 가보면 중간중간 바위가 튀어나와 있는 지형을 볼 수 있는데요. 맨해튼의 지반이 원래 이런 모습이라고 합니다. 매우 단단한 기반암이지요. 고층 건물을 짓기 위해 지반을 다지는데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셈입니다. 지진에 강하고 흔들림이 없어서 고층 빌딩을 짓기에 이상적인 장소라는 분석입니다.
여기에 막강한 인재들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원주민들인데요. 이들은 고소공포증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100층 높이의 건물 위를 걸어 다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균형도 잘 잡았습니다. 건설 당시 사진을 보면 원주민들이 까마득하게 맨해튼이 내려다보이는 철근 위를 평화롭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발전된 건축 기술도 도움을 줬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자유의 여신상, 에펠탑 등을 만든 구스타브 에펠이 사용하던 '철제 구조'를 사용했습니다. 대부분의 부품은 제철소에서 미리 조립해 공사 현장에서는 간단하게 고정됐습니다. 그 결과 건설비용은 래스콥의 추산보다 적게 들었고, 계획보다 빨리 완공됐습니다.
급하게 지은 건물이지만 매우 튼튼했습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가 안개 때문에 시야 확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운전하다 79층을 들이받고 추락했지만 빌딩은 피해가 없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1933년 개봉한 '킹콩'에서 킹콩이 매달려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최초라는 기록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1961년에는 6500만 달러에 팔렸는데 이는 현재 가치로 5억5700만 달러 수준입니다. 당시 토지가 포함되지 않은 단일 건물 가격으로는 가장 비싼 기록을 세웠습니다. 1978년에는 건물을 오르는 '빌딩 런업'대회가 처음으로 열리기도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진이 찍힌 건축물로도 이름을 올렸다고 하네요. 말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인 셈입니다.
지금 얼마일지가 궁금하실 텐데요. 최근 매매가 된 적이 없기 때문에 현재 가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2016년 카타르 투자청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지분 9.9%를 6억2200만 달러에 사들인 것을 참고하면 대략적인 가치는 추산할 수 있을 겁니다.
뉴욕=강영연 특파원 yykang@hankyung.com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이름부터 뉴욕을 대표하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많은 초고층 건물이 생겼지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맨해튼 스카이 라인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너무 높아서 가까이서 보면 전체를 보기 힘들고 조금을 멀리서 보여야 그 높이와 모양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데요.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 울워스 고딕 양식의 건물에 뾰족한 탑이 눈에 띄는 건물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알고 보면 한국과 굉장히 가까운 건물인데요. 맨해튼 34번가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코리아타운(33번가)과 아주 가깝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1년 완공됐습니다. 전체 층수는 102층, 높이는 381m에 달합니다. 1950년 추가로 설치된 탑을 포함하면 총 높이는 448m에 달합니다. 1971년 세계무역센터가 지어질 때까지 40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왕좌를 유지해왔습니다. 86층과 102층에는 전망대가 있는데요. 지금도 뉴욕을 찾는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는 관광 명소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지어지던 1920년대는 미국의 건설 붐이 한창이었습니다. 1871년 대화재로 시카고가 완전히 파괴되면서 재건 작업이 시작됐고, 이것이 건설붐의 시작이었습니다. 특히 한정된 토지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초고층 건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습니다. 성공한 사업가였던 제너럴 모터스의 설립자인 존 래스콥은 이 경쟁에서 승자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당시 미국 경제는 엄청난 호황이었고, 뉴욕 맨해튼 5번가는 지금과 같이 화려한 모습이었습니다. 명품 매장도 잇따라 들어섰죠. 당시 뉴욕 상류층이 모이는 부와 화려함,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이 있었습니다.
래스콥은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호텔의 상징성을 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땅'만 원했습니다. 래스콥은 1600만 달러에 호텔을 매수했습니다. 이때 갑자기 1929년 블랙프라이데이로 미국 경제가 타격을 받으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래스콥은 운 좋게 대출을 받았고, 예정대로 건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호텔을 철거했습니다.
돈을 빌렸지만 이자 상환에 대한 부담으로 공사를 빨리 진행해야 했습니다. 목표는 18개월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 맨해튼에서 크라이슬러의 창업자인 월터 크라이슬러 역시 초고층 빌딩을 짓고 있었는데요. 이것보다 높게 지어야 했습니다. 래스콥은 계속해서 크라이슬러의 계획을 확인하고, 무너지지 않고 지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0년 3월 17일 공사를 시작했고, 1931년 5월 1일에 개장했습니다. 1년 45일 만에 100층이 넘는 고층 빌딩을 지은 겁니다. 하루에 2미터씩, 한 달에 30미터씩 건물이 올라간 셈입니다.
현재의 기술로도 쉽지 않은 초고층 건물을 1930년대에 이렇게 빨리 지을 수 있었을까요. 먼저 지질학적으로 이점이 있습니다. 센트럴파크를 가보면 중간중간 바위가 튀어나와 있는 지형을 볼 수 있는데요. 맨해튼의 지반이 원래 이런 모습이라고 합니다. 매우 단단한 기반암이지요. 고층 건물을 짓기 위해 지반을 다지는데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셈입니다. 지진에 강하고 흔들림이 없어서 고층 빌딩을 짓기에 이상적인 장소라는 분석입니다.
여기에 막강한 인재들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원주민들인데요. 이들은 고소공포증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100층 높이의 건물 위를 걸어 다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균형도 잘 잡았습니다. 건설 당시 사진을 보면 원주민들이 까마득하게 맨해튼이 내려다보이는 철근 위를 평화롭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발전된 건축 기술도 도움을 줬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자유의 여신상, 에펠탑 등을 만든 구스타브 에펠이 사용하던 '철제 구조'를 사용했습니다. 대부분의 부품은 제철소에서 미리 조립해 공사 현장에서는 간단하게 고정됐습니다. 그 결과 건설비용은 래스콥의 추산보다 적게 들었고, 계획보다 빨리 완공됐습니다.
급하게 지은 건물이지만 매우 튼튼했습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폭격기가 안개 때문에 시야 확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운전하다 79층을 들이받고 추락했지만 빌딩은 피해가 없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1933년 개봉한 '킹콩'에서 킹콩이 매달려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최초라는 기록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1961년에는 6500만 달러에 팔렸는데 이는 현재 가치로 5억5700만 달러 수준입니다. 당시 토지가 포함되지 않은 단일 건물 가격으로는 가장 비싼 기록을 세웠습니다. 1978년에는 건물을 오르는 '빌딩 런업'대회가 처음으로 열리기도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진이 찍힌 건축물로도 이름을 올렸다고 하네요. 말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인 셈입니다.
지금 얼마일지가 궁금하실 텐데요. 최근 매매가 된 적이 없기 때문에 현재 가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2016년 카타르 투자청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지분 9.9%를 6억2200만 달러에 사들인 것을 참고하면 대략적인 가치는 추산할 수 있을 겁니다.
뉴욕=강영연 특파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