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 예상보다 더 걷힌 국세(초과 세수)와 쓰고 남은 예산(세계잉여금)이 각각 61조4000억원과 23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로 집계됐다. 코로나 사태, 경기 부진 등으로 가계살림은 빠듯한데 정부만 ‘세금 풍년’을 구가한 셈이다. 여기에 경기도 법인카드와 청와대 특별활동비 유용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나라살림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 채운 나라곳간을 고양이에게 맡긴 격이라는 비판이다.

초과 세수와 방만 예산에 관해선 정부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예상 세수와 실제 세수 간 오차율이 21.7%에 달한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추경을 포함해 세 차례 추계 때마다 다 틀린 것도 황당하다. 뒤늦게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경질하고, 추계방식을 고친다고 호들갑이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점은 정부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기재부 실력도 문제지만 지난해 역대급 초과 세수가 발생한 데는 헛발 대책으로 집값이 급등해 재산세 종부세 등 부동산 관련 세수가 26조원이나 급증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변석개하는 부동산 제도 속에선 노스트라다무스도 추계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해명도 전혀 일리가 없진 않다.

걷은 세금을 제대로 쓴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100조원에 가까운 나랏빚(적자국채)을 내 예산을 짠 처지에 세금이 더 걷혔다고 무조건 쓰고 보자는 여권의 행태도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집권층을 둘러싼 모럴 해저드와 위법·탈법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이재명 여당 대선 후보의 부인 김혜경 씨와 관련해 공무원 시중, 관용차 불법 사용 논란에 이어 법인카드를 사용한 ‘맛집 순례’ ‘병원비 대납’ 등 의혹이 점입가경이다. 카드 바꿔치기, 쪼개기 결제 수법에선 말문이 막힌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모두 처벌대상이다. “다 제 불찰”이라고 몇 마디 모호한 사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여기에다 청와대 특수활동비와 대통령 부인 의전비용 자료를 공개하라는 행정법원 판결도 나왔다. 현직 광복회장이 독립유공자 자녀 장학금으로 줘야 할 공금을 횡령한 사실까지 국가보훈처 감사에서 확인됐다. 윗물이 이 지경이니 밑에선 눈먼 예산을 노린 ‘세금 도둑’이 판치는 게 아니겠나.

세제와 세정, 재정 관리는 국가 운영의 근간이다. 정부의 뼈를 깎는 자성과 엄정한 수사가 없다면 나라살림에 대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