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 한경 DB
저축은행 / 한경 DB
시중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새해 들어 수신금리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저축은행 업계에선 예적금 금리 인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주식과 암호화폐 하락장이 펼쳐지면서 굳이 이자 혜택을 늘리지 않아도 시중은행 대비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으로 돈이 몰리고 있어서다. 올해 한층 강화된 대출규제로 여신 영업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신고가 마냥 늘어나는 것이 저축은행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SBI·OK, 예금금리 인하

3일 업계에 따르면 SBI저축은행은 지난달 정기예금 금리(1년 만기 기준)를 연 2.45%에서 연 2.4%로 인하했다. 작년 12월20일 연 2.4%에서 0.05% 올린지 한달여 만에 금리를 원래 수준으로 되돌렸다. OK저축은행도 지난달 개인고객 대상 기준 중도해지OK정기예금369의 금리를 연 2.2%에서 연 1.6%로 0.6%포인트 내렸다. 웰컴저축은행과 KB저축은행,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 등도 올 들어 예적금 금리 인하 행렬에 동참했다.

저축은행 업계 전반을 살펴보면 수신금리가 소폭 오름세를 보이고 있긴 하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79개 저축은행들의 정기예금 평균금리는 지난달 1일 연 2.37%에서 지난 2일 연 2.43%로 0.06%포인트 상승했다. 상상인저축은행이 정기예금 금리를 0.05%포인트 올리고 OK저축은행이 ‘OK읏샷정기예금’ 금리를 기존 연 1.3%에서 연 2.5%로 올려 1000억원 한도 특별판매를 진행하는 등 금리 인상 사례도 없진 않다.

하지만 지난달 14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에서 연 1.25%로 인상한 이후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최대 0.4%포인트 올린 것과 비교할 때 대형 저축은행들 위주로 금리를 깎은 것은 뚜렷하게 대조되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지난달 국내 기업공개(IPO) 역사상 최대어로 꼽힌 LG에너지솔루션 공모주 청약 전후로도 저축은행 수신금리는 변동이 없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공모주 시즌마다 환불금을 잡기 위해 금리를 ‘반짝’ 올렸으나 이번에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출규제로 수신고 속도조절”

저축은행 수신금리가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는 이유는 은행 대비 높은 금리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식, 암호화폐, 부동산 시장 등이 맥을 못추면서 ‘예테크(예금+재테크)’가 각광을 받고 있다”며 “올해 기준금리 인상분을 선반영한 고금리를 작년 말부터 운영하고 있어 추가로 예적금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수신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가장 높은 금리를 주는 저축은행 상품은 HB저축은행의 스마트회전정기예금으로 최고 연 2.8%에 달한다. 정기적금 상품 중에선 웰컴저축은행의 ‘웰뱅 든든적금’이 최고 연 6%의 금리를 제공해 가장 높다. 저축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대부분 연 2% 중반대지만 은행 상품은 연 1%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저축은행 계좌에 빠른 속도로 돈이 몰리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수신잔액은 작년 11월 기준 96조8178억원으로 1년 전(73조9025억원) 대비 31% 증가했다. LG에너지솔루션 청약일 이틀 당시 평소 대비 30% 자금이 빠져나갔다는 A저축은행 관계자는 “금리를 올리지 않았는데도 청약 종료 후 대부분이 다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대출규제도 저축은행의 금리 정체에 한몫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총량규제로 가계대출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자칫 예적금 이자 비용만 나갈 수 있어 수신고를 늘리는데 속도조절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해 저축은행 업계는 21.1%의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규제를 받았지만 올해는 10~15% 수준으로 강화됐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