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범 前 LG전자 사장 "LG에어컨 세계 1등 만든 건 '믿는다' 한마디"
“경영은 곧 생명력을 지닌 조직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을 관리해온 경험은 조직의 최고 책임자들에겐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이죠. 후배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에 5년의 시간을 들여 책을 냈습니다.”

신문범 전 LG전자 중국법인 사장(사진)에겐 소중히 여기는 ‘보물’이 있다. 큰 보직을 맡았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남겼던 ‘경영의 기록’들이다. 수첩에 메모한 아이디어, 음성기록, 사내 교육용으로 만든 자료 등을 모두 더하면 한 박스 가까이 된다.

몸소 체험한 경험을 후배들과 나누기 위해 신 전 사장은 지난 30년간의 지속 가능 경영 관련 깨우침을 모아 《더 빅 윈》을 펴냈다. 최근 만난 신 전 사장은 “선배 경영자로서 물려주고픈 가장 소중한 것이 ‘산 경험’이었다”며 “전임자의 유산을 이어받는 계승의 삶을 통해 조직 전체가 공영을 펼쳐나가는 ‘큰 승리(Big Win)’를 이루자고 제목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LG전자의 세계 에어컨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한 주역이 바로 신 전 사장이다. 그는 1986년 LG전자(당시 금성사)에 입사해 해외영업 부서를 거쳐 두바이 지사장, 인도법인장, 중국법인장 등을 지냈다. 경영 관련 노트를 시작한 것도 에어컨 해외 영업을 맡을 즈음이다. 신 전 사장은 “하루하루 전쟁터와 같은 격전지에서 생존을 궁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영 경험을 메모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30여 년의 경험에서 그가 찾아낸 ‘빅 윈’의 요건은 무엇일까. 신 전 사장은 “유형자산이 아닌, 무형자산을 남기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개인들의 타고난 경쟁력으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분출되는 조직문화를 갖춰야 창의적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불통·불신·불평등·불균형·불규칙·불일치·불투명 등 조직의 다양성과 결속에 걸림돌인 일곱 가지 폐해를 타파하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1992년 에어컨 해외영업팀장을 처음 맡았을 때 사업부장께서 제게 한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해외 영업을 가장 잘 아니까 믿고 맡기겠다’는 것이었죠. 이 신뢰의 한마디가 제겐 큰 힘이 됐고, 신뢰의 조직 문화가 ‘휘센’의 세계 1위 등극을 가능하게 한 기반이 됐습니다. 그때 이후로 ‘자율’과 ‘신뢰’가 경영의 철칙이 됐습니다.”

이번 출간으로 숙원 하나를 이뤘다는 그는 현장을 물러나서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19년 같은 해 퇴임한 LG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5명과 함께 창업 지원회사 엔젤식스플러스를 세워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인구 절벽’ 문제에 관심을 두고 스터디그룹을 결성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그가 하는 여러 활동 중 하나다.

신 전 사장은 “인구 절벽은 인구 소멸과 구조의 불균형을 동시에 야기하는 이슈로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기업인의 눈으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 나름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