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아내·자녀 동시학대 사례 주목…"가해여성 불안정한 환경도 관심 필요"
아동학대범죄는 '나쁜 엄마' 때문?…젠더 돋보기로 본 판결문
부모의 아동학대로 어린아이가 숨진 사건을 다룬 기사에는 흔히 '나쁜 엄마'라는 수식어가 종종 등장한다.

이는 곧 '나쁜 엄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진다.

그러나 양육자에 대한 처벌 강화만으로는 아동학대 범죄를 예방할 수 없으며, 이를 유발하는 젠더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펴낸 논문 '아동학대에 대한 젠더 분석: 남성성, 돌봄, 재생산권'에서 아동이 사망에 이른 아동학대 사건 중 2020년에 선고된 판결문 22건을 분석했다.

22건 중 학대 행위자가 엄마(계모 포함) 단독인 경우는 11건, 아버지 단독인 경우는 7건, 부모가 함께 학대한 사건은 3건이었다.

나머지 1건은 엄마가 교제하던 남성이 가해자인 사건이었다.

추 교수는 이 중 여러 사건에서 남편의 '아내 학대'와 아동학대가 동시에 발생한 사실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그 배경에 폭력적 수단으로 가족 구성원을 자신의 통제와 지배 하에 두려는 왜곡된 남성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친부가 생후 15개월 된 딸을 폭행하고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에서 피고인은 아내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행사했고,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자 재결합을 요구하며 아이를 데려왔지만 오히려 학대하고 방치했다.

교제 중인 여성의 세 살 된 아들을 살해한 남성은 '아들 때문에 여자친구가 자신을 소홀히 한다'는 생각에 폭력을 휘두르고, 끝내 아이의 목숨을 빼앗았다.

재혼한 남편의 아동학대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여성은 초기에는 남편을 직접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나, 이후 남편의 폭력이 계속되면서 자신도 가해자로 변했다.

추 교수는 이런 경향성을 지적하며 아동학대 신고 현장에서 여성에 대한 학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개입하지 않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문은 또 아동학대를 저지른 여성 피고인 상당수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이런 우울증의 원인이 빈곤, 미혼 출산 등으로 인한 불안정한 환경에 있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라 올바른 양육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고, 가난한 환경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극심한 양육 스트레스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추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불안정한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기 위해 취업지원·24시간 보육지원 등이 여성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으나, 아이를 온전히 홀로 돌봐야 하거나 정보 접근이 어려운 여성들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생애 경험이 양육 태도에 미치는 영향, 여성들의 삶의 조건이 취약해지는 현실을 분석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추 교수의 연구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이달 펴낸 '형사정책연구' 제32권 4호에 실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