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경제적 궁한 상황서 격분해 범행한 점 고려"
수억원 횡령금 갚으라는 점주 살해…대리점 직원 징역 13년
한 스포츠용품 대리점에서 수억원을 빼돌린 사실을 확인하고 변제를 요구하는 점주를 홧김에 살해한 직원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안동범 부장판사)는 살인·절도 혐의로 구속기소된 주모(43)씨에게 이달 24일 징역 13년을 선고하고 5년간의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주씨는 지난해 9월 8일 오후 4시 30분께 피해자 A(61)씨의 집에서 공금을 갚을 방안을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흉기로 A씨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2006년께 A씨가 운영하는 B 스포츠용품 공식 판매대리점에 입사했다가 약 1년 뒤 퇴사한 주씨는 2010년께 재입사해 매장·물류 관리를 하는 동시에 개인 사업자 자격으로 다른 스포츠용품 매장을 위탁 운영했다.

주씨는 2015년께부터 지난해 8월께까지 B 대리점에 공급받은 물건을 백화점 등의 정식 판매 경로가 아닌 중국 보따리상들에게 판 뒤 수익금 3억7천800만원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개인 생활비와 직원 급여 등으로 썼다.

6년간 이어진 주씨의 범행은 작년 8월 말께 A씨에게 들통났다.

A씨가 횡령금의 용처와 변제 방안을 추궁하자 주씨는 변제각서를 쓰고 공증을 받기로 약속했다.

실제로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 등을 들고 A씨 집을 찾은 주씨는 채무 변제 방안에 대해 대화하던 중 A씨의 말에 화를 참지 못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주씨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A씨의 목을 흉기로 찌르고, 피를 흘리며 도망가려는 A씨를 현관에서 몸으로 5분간 짓눌러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범행 이후 A씨 지갑에 있던 현금 26만1천원을 빼내 가지고 간 혐의도 받았다.

주씨는 당초 빚을 갚지 않으려 A씨를 살해한 혐의(강도살인)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재판에서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주씨가 우발적으로 범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배심원 7명도 강도살인 혐의는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는 그 이유를 불문하고 결코 용서될 수 없다"면서 "피해자는 극심한 공포와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유족들도 형언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질타했다.

다만 "피고인이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황에서 채무변제 문제로 다툼을 하던 중 격분해 범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과 이 사건 이전에 벌금형보다 무거운 형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요소로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주씨에게 형 집행 종료 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이 필요할 정도로 살인 범행을 다시 저지를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검찰이 청구한 부착 명령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전날 항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