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장자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현실이란 과연 무엇인지 묻는 말에 답하기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우선 눈에 보이는 세계가 곧바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아니다.
인간의 뇌는 감각기관이 전달하는 정보를 해석하고 재구성한다.
인간이 경험한다고 믿는 현실은 일종의 착시현상이자 뇌가 구성한 현실이다.
실재와 인간의 경험에 대한 뇌과학 연구는 최종적 의미의 메타버스, 즉 디지털 기반 현실에 철학적 실마리를 제공한다.
김대식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의 '메타버스 사피언스'는 뇌과학과 컴퓨터과학·인류학을 통해 메타버스 시대의 인간을 둘러싼 여러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지금까지 인간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보고 듣기만 했다.
그러나 메타버스는 인간이 정보 안으로 직접 들어가 경험하는 플랫폼이다.
필요한 과학기술이 완성되면 인간은 메타버스를 더는 '가상' 현실이 아닌, 또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몸이 위치한 곳에서의 경험에만 익숙한 인간이 메타버스를 현실 세계로 인식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태어난 뒤 10∼12년까지 '결정적 시기'에 쌓은 경험에 의해 완성된다.
이후에는 가능한 편한 곳에 머물며 사회적 관계를 맺으려는 속성이 있다.
이렇게 뇌의 하드웨어가 형성되는 환경이 '고향'이라면, 오늘날 아날로그보다 디지털 현실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 Z세대에게는 메타버스가 고향일 수 있다.
Z세대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게임에서 값비싼 명품을 구매한다.
기성세대는 현실에서 들고 다니지도 못하는 가방을 사는 Z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Z세대는 디지털 현실에서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디지털 현실은 더이상 '가상'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뇌 안에는 자기 몸과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호문쿨루스라는 영역이 있다.
경험에 따라 이 영역이 확장되면 정체성도 확대될 수 있다.
'결정적 시기'에 원숭이의 팔에 막대기를 달아 몸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면, 원숭이는 막대기 끝까지를 자신의 몸으로 인식한다.
인간이 디지털 현실의 아바타를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한다는 구상의 근거다.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는 게임을 무대로 콘서트를 열었다.
디지털 지구의 평양 땅은 한국인들이 사들이고 있다.
인류가 메타버스로 이주하면 지구는 인공지능 시대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처럼 버려진 땅이 될까.
저자는 실재와 가상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곧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왜 메타버스 시대에도 아날로그 현실이 여전히 필요한지, 그리고 디지털 휴먼이 아닌 아날로그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
동아시아. 160쪽. 1만5천500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