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올림픽 불편한 동거…"올림픽보다 방역이 우선"
중심가선 조금이나마 분위기 느껴져…카운트다운 시계탑과 기념품판매점 사람들 붐벼

"2008년 하계올림픽하고 비교하면 코로나19 때문인지 올림픽이 개막하는지도 모르게 분위기가 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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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을 열흘 앞둔 25일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에 설치된 핵산 검사소 앞에서 만난 직장인 천(陳·30) 모 씨는 14년 만의 올림픽 개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전수 검사 대상이 돼 핵산 검사를 받았다는 천 씨는 "2008년 하계올림픽 당시 들뜬 분위기에 비하면 내 주변 지인들도 올림픽에 대해 무감각하다"면서 "올림픽보다는 다들 코로나19에 걸리지나 않을까 외출도 삼가고, 춘제(春節·중국의 설·올해 2월 1일)에 귀향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더 걱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TV에서 동계올림픽 종목에 관한 방송이 많이 나오지만, 여전히 동계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은 소수인 것 같다"며 "2008년에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TV 앞에 모여 앉아서 다이빙과 탁구 경기를 봤었는데 이번 올림픽에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일조차 어려울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베이징 현장] "개막하는지도 모를 정도"…방역 탓에 분위기 '썰렁'
오미크론 변이 감염자가 확인됐던 하이뎬(海淀)구에 사는 주민 장(張·54)모 씨는 코로나19와 올림픽의 불편한 동거가 베이징 전반에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장 씨는 "며칠 전 집 앞 호텔이 올림픽 관련 시설로 지정되면서 '폐쇄루프'에 포함돼 외부인 접근이 통제됐다"면서 "마을 입구에는 확진자의 동선과 겹친 주민들을 검사하기 위해 임시 핵산 검사소가 들어섰다"고 소개했다.

장씨는 이어 "올림픽 폐쇄루프 내 호텔과 임시 핵산 검사소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 현재 베이징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며 "일반인의 경기 관람이 제한되면서 베이징 사람들의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었고, 지금은 춘제를 앞두고 방역을 어떻게 더 철저히 할 것인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폐쇄루프는 경기장, 선수촌, 훈련장을 마치 거대한 거품을 덮어씌운 것처럼 외부와 차단하는 방식이다.

경기장·선수촌·훈련장 간 이동은 전용 버스만 이용할 수 있다.

확진자가 발생하더라도 외부로 확산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베이징에서는 지난 15일 이후 하루 수명의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당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며 초고강도 방역 조치를 취하고 있다.

[베이징 현장] "개막하는지도 모를 정도"…방역 탓에 분위기 '썰렁'
그나마 올림픽 경기장과 올림픽 선수촌이 자리한 차오양구나 올림픽 현수막이 도로마다 붙은 하이뎬구는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있는 편이다.

최근 집단 감염이 발생해 누적 확진자가 30명이 넘어선 베이징 남부 펑타이(豊臺)구에서는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스케이팅 경기장의 빙판만큼이나 싸늘했다.

펑타이구에서는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며 이미 200만명에 달하는 전 주민을 대상으로 두 번째 핵산 검사가 진행 중이다.

차오양구에서 펑타이구로 이동하는 택시에서 만난 운전기사 류(32) 모 씨는 "베이징 중심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올림픽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서 "특히 펑타이구는 주민들이 봉쇄 조치와 반복되는 핵산 검사에 지쳐 올림픽을 생각할 새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베이징 도심 지역인 궈마오(國貿)에서 택시를 타고 10여 분 남쪽으로 내려가자 도로 양옆으로 걸려 있던 올림픽 홍보 현수막이 모습을 감췄다.

펑타이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핵산 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주민들이었다.

임시 핵산 검사소는 아파트 단지별 또는 사무용 건물별로 거의 500m 간격으로 설치돼 있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핵산 검사를 받으러 온 주민 리(44·여) 모 씨는 "펑타이에서 올림픽과 관련된 행사나 홍보 활동을 본 적이 없다"며 "최근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대부분 주민이 외출을 삼가고, 정부 지시에 따라 핵산 검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리 씨는 "이번이 벌써 2차 전수 검사인데 이번 검사로 상황이 진정됐으면 좋겠다"면서 "올림픽이 국가의 중요한 행사긴 하지만 그보다 방역 문제가 더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베이징 현장] "개막하는지도 모를 정도"…방역 탓에 분위기 '썰렁'
이런 와중에도 베이징 중심가 쇼핑 거리인 왕푸징(王府井)에서는 조금이나마 올림픽 분위기가 느껴졌다.

방역 조치가 강화하는 상황에도 왕푸징에 세워진 올림픽 개막 카운트다운 시계탑에는 기념 촬영을 하려는 시민들이 끊이지 않았다.

베이징 시민들은 평일 오후임에도 가족과 함께 왕푸징을 찾아 시계탑 한복판에 써진 'D-10'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왕푸징 거리에 마련된 화단과 벤치도 올림픽 마스코트인 '빙둔둔'(氷墩墩)과 '쉐룽룽'(雪容融) 그림으로 치장을 마쳤다.

전반적으로 침체한 올림픽 분위기 속에서도 왕푸징 거리에 문을 연 올림픽 기념품 판매점은 사람들로 붐볐다.

중국에서 인기가 좋은 올림픽 마스코트 빙둔둔 인형 판매대는 일부 품목이 동나기도 했다.

기념품 판매원은 "주말에는 매장이 거의 꽉 찰 정도로 손님들이 많다"면서 "이전 하계올림픽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올림픽에 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베이징 현장] "개막하는지도 모를 정도"…방역 탓에 분위기 '썰렁'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