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수도 이전과 '권력 이동'
고려 말 이성계와 정도전이 이끄는 강경 개혁파가 온건파 정몽주와 최영을 제거한 뒤 가장 먼저 추진한 게 천도(遷都)였다. “왕조가 바뀌면 천명을 받들어 도읍을 옮기기 마련이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구세력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이었다. 계룡산과 무악(현재 연희동 일대) 등을 제치고 한양이 새 도읍지로 결정된 게 1394년. 태조 이성계는 천도 후에야 왕권을 강화하며 조선왕조 500년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수도 이전은 어느 나라든 ‘권력의 이동’으로 읽힌다. 미국도 상업자본과 농업세력 간 힘의 무게 추에 따라 수도가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로, 다시 워싱턴DC로 바뀌었다. 카자흐스탄은 구(舊)소련 독립 후 알마티에서 누르술탄으로 수도를 옮겼고, 호주는 멜버른과 시드니 간 도시 경쟁 속에 캔버라가 어부지리로 새 수도가 됐다. 나이지리아는 극심한 정쟁을 피해 정치·인종 면에서 중립지인 아부자로 수도를 바꾼 경우다.

천도에 실패한 사례도 적지 않다. 2005년 미얀마 군부가 새 수도로 깜짝 발표한 네피도는 ‘세계에서 가장 기이한 유령 수도’라는 평가를 듣고 있고, 대표적 ‘계획 수도’로 건설된 브라질의 브라질리아는 60년이 넘었지만 기반시설 부족 등으로 서민이 거주할 수 없는 도시로 전락했다. 최근 100년 새 30개국 이상이 수도를 옮겼고, 40여 개국이 수도 이전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의회가 최근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보르네오섬 동(東)칼리만탄으로 옮기는 수도이전법을 통과시켜 눈길을 끈다. 2045년까지 총 446조루피아(약 38조원)를 투자해 정글 한복판에 새 행정수도 누산타라(Nusantara·열도라는 뜻)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자카르타 인구 과밀 등의 문제를 해소하고 국토 균형개발 차원에서 새 수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누산타라가 벤치마킹한 모델이 세종특별자치시라고 해 또 관심이다.

세종시는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추진됐지만 그 기저엔 당시 집권세력이 서울을 벗어난 새 권력 기반을 도모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수도 이전 공약은 선거 때마다 충청권 표심에 영향을 줬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 사이에서 ‘제2 청와대 설치’ ‘국회 분원 설치’ 등 공약이 난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표가 급해도 세종시가 과연 균형발전 등에 기여했는지부터 따져 보는 게 순서 아닐까.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