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구둣방의 눈물
길거리 구둣방 옆을 지날 때면 까만 구두약부터 떠오른다. 얇은 헝겊에 묻혀 쓱싹쓱싹 문지르면 금세 광택이 나는 구두코,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낡은 굽을 갈아주는 ‘구두 아저씨’…. ‘구두닦이’이자 ‘구두 수선공’인 이들은 새벽부터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구두 먼지뿐 아니라 얼룩진 마음까지 닦아주는 생활의 파수꾼이다.

코로나 직격탄으로 구둣방이 잇달아 문을 닫고 있다. 지난 2년간 서울에서만 110곳이 폐업했다. 2019년만 해도 거의 1000곳에 달했지만 작년 말 882곳으로 줄었다. 직장인의 재택근무와 비대면 영업이 늘어 수입이 급감한 탓이다. 구두보다 캐주얼화나 운동화를 택하고, 수선보다 새 신발 구입을 선호하는 소비습관의 변화까지 겹쳤다.

이러니 하루 1만~2만원밖에 못 버는 곳이 수두룩하다. 한 달 꼬박 해봐야 50만원 안팎이다. 결국 막노동판으로 옮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나이가 많은 이들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 고령으로 인한 영업포기 사례가 30%나 된다. 남아 있는 사람도 60대 이상이 대부분이어서 폐업은 더 늘어날 모양이다.

이들 중에는 남을 돕는 데 앞장선 ‘천사’도 많다. 20여 년간 구두를 수선해 온 김병록 씨는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힘겨워하는 이웃을 도와달라”며 땅 3만3000여㎡(1만 평, 시가 7억원)를 파주시에 기증했다. 서울 상암동 도로변의 폐업 수선점을 활용해 무료로 신발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사랑+희망 나눔 전시관’까지 열었다.

서울 약수역 앞의 청각장애 구두 수선공 전용출 씨는 10년째 지구촌 장애아를 돕고 있다. 다섯 살 때 홍역으로 청력을 잃고 열 살부터 구두를 닦아온 그는 과테말라의 청각장애 소녀에게 매달 4만5000원 이상을 보낸다. 구두 12켤레를 닦아야 버는 돈이다. 이밖에 30여 년간 구둣방을 운영하며 폐품수집 봉사를 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강상호 씨 등 ‘나눔 천사’들이 많다.

이들은 자신이 정성껏 손질한 헌 구두가 누구에겐 새 신보다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의인이다. 이들이 닦고 수선한 신발로 누군가는 또 다른 희망의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 삶의 이력(履歷) 또한 ‘신발(履)이 지나온(歷) 발자취’가 아닌가. 사라지는 구둣방의 빈자리에서 그동안 내 신발이 걸어온 역사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