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로 진화해가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6월 자사 행사 ‘왓츠 넥스트 포 게이밍(What’s Next for Gaming)’에서 게임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에서 커뮤니티(이용자)가 주도하는 콘텐츠와 소비, 상거래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게임처럼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당시 나델라의 발언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다른 방식으로 메타버스 전략의 ‘서막’을 알렸다. 게임사 액티비전블리자드(블리자드) 인수다. MS는 18일(현지시간) 687억달러(약 81조9000억원)에 블리자드를 인수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두 회사 시가총액 합이 2800조원, 연매출은 210조원에 달하는 역대급 ‘메가 딜’이다.
메타버스 경쟁의 핵심은 커뮤니티…게임, 빅테크 새 격전지로

완성도 높은 메타버스, 게임

MS가 블리자드 인수로 명확히 한 목표지점은 메타버스 시장 글로벌 주도권이다. MS가 지금까지 메타버스 관련 사업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MS는 메타버스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혼합현실(MR) 기기인 ‘홀로렌즈’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MS가 이번 인수로 하드웨어보다 플랫폼이 메타버스의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국내 한 게임사 대표는 “최근 여기저기서 메타버스에 대해 거론하면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하드웨어나 새로운 방식을 얘기하지만 메타버스의 핵심은 충성도 높은 커뮤니티 형성”이라며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주기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이미 인터넷 게임에서 만들어진 세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 등 게임들이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주목받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도 수십만 명이 10년 이상 온라인으로 친교 활동을 하고 있다.

나델라 CEO는 이날 “우리의 비전은 콘텐츠와 커머스가 자유롭게 흐르는 엔터테인먼트의 강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격화하는 메타버스 경쟁

메타버스 경쟁의 핵심은 커뮤니티…게임, 빅테크 새 격전지로
글로벌 빅테크들의 움직임도 메타버스에 집중돼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비접촉 문화의 확산으로 생활, 소비, 생산, 사교 등 모든 일상이 가상과 현실의 혼합으로 뒤바뀌는 ‘디지털 대전환’이 추동력이 됐다.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해 10월 사명을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바꾸고 미래 먹거리로 메타버스를 지목했다. 향후 1년간 메타버스 관련 기술 개발과 인력 채용에 100억달러(약 11조9200억원)를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애플은 올해 말 AR 헤드셋 또는 스마트 글라스 등 메타버스 기기를 내놓을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업종의 기업이 메타버스 사업을 앞다퉈 강화하고 있다. 제페토를 운영하는 네이버제트는 홍콩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카카오는 남궁훈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 공동센터장을 중심으로 메타버스 사업을 구상 중이다. 삼성전자는 SK텔레콤과 메타버스 분야에서 신규 사업을 발굴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메타버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게임 개발 엔진업체인 유니티와 최근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국내 게임업계 긴장

MS는 블리자드 인수로 게임 사업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콜 오브 듀티’ ‘캔디 크러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오버워치’ 등 인기 지식재산권(IP)도 대거 확보하게 됐다. MS는 콘솔용 게임 시장에서 경쟁사인 소니보다 독점 인기 게임을 더 많이 보유하게 됐다.

MS는 또 차세대 게임 플랫폼으로 떠오른 클라우드 게임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게 됐다. MS는 월정액 기반 게임 유통 서비스인 ‘엑스박스 게임 패스’를 운영하고 있다. ‘엑스박스 게임 패스’는 클라우드 기술을 활용해 고성능·고용량의 게임기 성능이 필요한 콘솔 게임을 스마트폰에서 즐길 수 있는 서비스다.

MS의 공격적인 행보에 국내 게임사들도 긴장하고 있다. 그동안 MS는 모바일 게임 중심인 국내 게임업계와 다른 길을 걸었다. 콘솔과 PC 게임 시장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MS가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클라우드 게임으로 국내 모바일 게임 이용자들의 선택 폭이 늘어난 것 자체가 국내 게임사에는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김주완/박상용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