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범의 별 헤는 밤] 12시간 별을 관측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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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이 길어지니 별 보기를 머뭇거리던 상황이 한계에 도달했다. 때마침 날이 맑아 밖으로 나가 밤을 새웠다. 별 보는 많은 사람들이 거의 예전 수준으로 행동하는 듯하다. 사람이 모이지 못하니 혼자 조용히 별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는 게 아닌가 싶다.
지난 한 달 사이에 유명한 유성우가 두 건(쌍둥이자리 유성우와 사분의자리 유성우)이나 있었지만 날씨 때문에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사분의자리 유성우의 극대기가 지난 다음 날 유성우 관측을 해 봤지만 6시간 동안 유성이 하나도 안 떨어졌고, 그 이틀 후에도 하나도 못 봤다. 이것도 참 의외의 결과다. 한두 개쯤은 떨어질 줄 알았지만, 전혀 없었다. 그 대신 밤새 날씨가 좋아서 하루의 절반인 12시간 동안 노출한 일주운동 사진을 얻었다. 이렇게 긴 일주운동 사진은 처음이다. 밤새 맑은 날도 만나기 어렵고, 카메라 배터리는 4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어서 긴 일주운동 관측을 하려면 반드시 보조 전원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12시간 동안 실수로 카메라를 한 번 툭 쳐 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25초에 한 장씩 찍도록 설정해 놨더니 밤새 1600장 넘게 찍혔다. 이를 모두 모으면 한 장의 일주운동 사진이 된다. 그 과정에 12시간 동안 지나간 비행기와 인공위성의 궤적을 모두 지우느라 찍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한 장의 멋진 사진을 얻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알았다. 북쪽 하늘의 일주운동 사진을 보면 동심원 한가운데서 밝게 회전하는 별이 북극성이다. 생각보다 북극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현산천문대 1.8m 망원경의 관측 모습을 12시간 동안 완전하게 지켜본 밤이었다.
사진을 처음 배우던 시절, 좋은 피사체를 찾고, 초점을 맞춰 적합한 노출로 찍고 현상·인화하는 기본적인 과정을 잘 알기에 사진 기술은 모두 익힌 줄 알았다. 그런데 천문학을 하면서 필름에 맺힌 별의 농도를 측정하거나 크기를 측정해 천체의 밝기를 안다는 것을 배웠다. 천체 사진은 아주 어두운 빛을 다루기 때문에 초증감처리라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고, 멋진 컬러 천체 사진은 빨강, 초록, 파랑의 세 가지 필터로 찍은 각각의 흑백 사진을 암실에서 합성해 만든다는 것도 배웠다. 또한 필름에 맺힌 영상을 증폭해 외부은하 주변의 미세한 밝기의 구조를 찾아내기도 하고, 하얗게 포화해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보이는 부분도 언샵마스크라는 특별한 기법으로 세부 구조가 잘 드러나게 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인 요즘은 이러한 기술이 모두 컴퓨터 안으로 들어왔다. 어렵게 배운 특별한 기술이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기술이 됐다. 깜깜한 암실에서 종일 할 작업을 컴퓨터 앞에서 편안하게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사진은 좋은 결과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부가 된다. 오래전의 10시간짜리 일주운동 사진이 지금의 12시간 일주운동 사진을 얻는 계기가 됐다. 밤이 긴 겨울철이 가기 전에 세계 최고의 밤하늘에서 얻은 별 궤적에 버금가는 일주운동 사진을 가까이에서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전영범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지난 한 달 사이에 유명한 유성우가 두 건(쌍둥이자리 유성우와 사분의자리 유성우)이나 있었지만 날씨 때문에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사분의자리 유성우의 극대기가 지난 다음 날 유성우 관측을 해 봤지만 6시간 동안 유성이 하나도 안 떨어졌고, 그 이틀 후에도 하나도 못 봤다. 이것도 참 의외의 결과다. 한두 개쯤은 떨어질 줄 알았지만, 전혀 없었다. 그 대신 밤새 날씨가 좋아서 하루의 절반인 12시간 동안 노출한 일주운동 사진을 얻었다. 이렇게 긴 일주운동 사진은 처음이다. 밤새 맑은 날도 만나기 어렵고, 카메라 배터리는 4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어서 긴 일주운동 관측을 하려면 반드시 보조 전원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12시간 동안 실수로 카메라를 한 번 툭 쳐 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25초에 한 장씩 찍도록 설정해 놨더니 밤새 1600장 넘게 찍혔다. 이를 모두 모으면 한 장의 일주운동 사진이 된다. 그 과정에 12시간 동안 지나간 비행기와 인공위성의 궤적을 모두 지우느라 찍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한 장의 멋진 사진을 얻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알았다. 북쪽 하늘의 일주운동 사진을 보면 동심원 한가운데서 밝게 회전하는 별이 북극성이다. 생각보다 북극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현산천문대 1.8m 망원경의 관측 모습을 12시간 동안 완전하게 지켜본 밤이었다.
천체의 마지막 기록은 사진
천문학은 사진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여러 번 이야기했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관측한 천체를 마지막으로 기록하는 것은 사진이다. 최근 궤도에 오른 6.5m 제임스웹 우주망원경도 마지막 기록은 사진이며, 허블우주망원경도 마찬가지다. 10조원이 넘는 돈을 써서 기껏 천체 사진만 찍는다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마지막 기록은 사진이라는 본질을 이해 못 했기 때문이다. 그 사진을 통해 우주의 새로운 현상을 찾고 이해하는 게 천문학이다.사진을 처음 배우던 시절, 좋은 피사체를 찾고, 초점을 맞춰 적합한 노출로 찍고 현상·인화하는 기본적인 과정을 잘 알기에 사진 기술은 모두 익힌 줄 알았다. 그런데 천문학을 하면서 필름에 맺힌 별의 농도를 측정하거나 크기를 측정해 천체의 밝기를 안다는 것을 배웠다. 천체 사진은 아주 어두운 빛을 다루기 때문에 초증감처리라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고, 멋진 컬러 천체 사진은 빨강, 초록, 파랑의 세 가지 필터로 찍은 각각의 흑백 사진을 암실에서 합성해 만든다는 것도 배웠다. 또한 필름에 맺힌 영상을 증폭해 외부은하 주변의 미세한 밝기의 구조를 찾아내기도 하고, 하얗게 포화해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보이는 부분도 언샵마스크라는 특별한 기법으로 세부 구조가 잘 드러나게 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인 요즘은 이러한 기술이 모두 컴퓨터 안으로 들어왔다. 어렵게 배운 특별한 기술이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기술이 됐다. 깜깜한 암실에서 종일 할 작업을 컴퓨터 앞에서 편안하게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노출시간 조절하면 도심서도 가능
서두가 길어졌는데 12시간 일주운동 사진을 보며, 오래전 천체 사진을 배우러 간 호주에서 봤던 10시간짜리 일주운동 사진의 감동이 떠올랐다. 3.9m 망원경 돔 주위를 빽빽하게 돌고 있는 별의 궤적은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보현산천문대에서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그 감동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밤하늘이 이미 많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디지털 세상이 되니 방법이 생겼다. 장시간의 일주운동 사진을 위해 노출 시간 내내 셔터를 열어둘 필요 없이 짧게 반복해서 찍어서 나중에 하나로 모아 원하는 시간 동안의 일주운동 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노출 시간만 조절하면 밝은 도심에서도 장시간의 일주운동을 찍을 수 있다.사진은 좋은 결과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부가 된다. 오래전의 10시간짜리 일주운동 사진이 지금의 12시간 일주운동 사진을 얻는 계기가 됐다. 밤이 긴 겨울철이 가기 전에 세계 최고의 밤하늘에서 얻은 별 궤적에 버금가는 일주운동 사진을 가까이에서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전영범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