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붕괴 진행 과정 보여주는 영상…최초 원인 규명은 정밀 조사해야"
"저기 무너졌다, 저기 무너져. 어우 거기도 떨어졌네."
지난 11일 오후 3시 35분 전후 광주 서구 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 현장 201동 39층 꼭대기에서는 중국인 작업자들의 다급하고 한탄 섞인 외침이 울려 퍼졌다.
현장에서는 39층의 바닥 면(슬라브)에 해당하는 곳에 거푸집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하늘에서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고, 사람의 목소리를 묻어버릴 만한 강풍이 불고 있었다.
이 와중에 사투리와 욕설이 섞인 중국인 작업자들의 목소리가 악천후를 뚫고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콘크리트가 쌓인 바닥 면은 평평해야 했지만, 가운데가 움푹 패어 주저앉아 있었다.
갑자기 '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거푸집이 꺾이듯 치솟아 들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작업자들은 짜증 섞인 한탄을 내뱉었다.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직전 상황이 담긴 총 2분 10여초 짜리 2개의 영상이 업체 관계자에 의해 공개됐다.
중국인 작업자가 관리자에게 보고하기 위해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영상에는 23~38층에 걸쳐 16개 층 외벽 등 구조물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하기 약 10여 분 전 상황이 찍혀 있었다.
다른 증언에 따르면 현장 작업자들은 이후 콘크리트 타설을 완료하고 보양 천막을 걷어냈다.
그 순간 타워크레인 방향에서 '펑펑' 소리가 났고, 콘크리트를 타설한 바닥(슬라브)이 천천히 10cm가량 내려앉기 시작했다. 놀란 작업자들은 서둘러 계단을 통해 대피하기 시작했다.
39층에서 27층까지 한달음에 내려온 순간, 또다시 '펑'하는 굉음이 들리더니, 1층 바깥으로 빠져나왔을 때는 그들이 작업했던 곳이 모조리 무너져 사라진 상태였다.
사고 직전 상황이 찍힌 영상을 본 전문가는 "천천히 붕괴가 진행되는 장면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광운대 건축공학과 이원호 교수는 "거푸집이 들리고, 바닥이 내려앉는 것은 콘크리트를 타설한 슬라브 밑을 받치는 동바리(비계기둥)가 하나씩 무너져 내린 상황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동바리가 다른 외부 요인 탓에 힘을 받지 못하고 주저앉기 시작해 결국 임계점을 넘는 순간 모조리 무너져 내린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상만으로는 최초 붕괴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의견이다.
그는 "영상만으로는 붕괴가 서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는 진행 상황을 알 수는 있지만, 최초 어떤 외력에 의해 붕괴가 시작됐는지는 알기 어려워 더욱 정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며 "다른 붕괴상황이 찍힌 영상을 보면 붕괴가 최상층이 아닌 아래층에서 먼저 시작되고, 이후 상층이 붕괴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초 붕괴를 야기한 것이 강풍의 영향인지, 또는 신축 아파트 벽면에 붙어있던 크레인·거푸집·호이스트가 뜯기며 구조적 손상이 먼저 발생했을 가능성도 크다"며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광주 아이파크 붕괴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학계·업계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수사당국도 별도로 합동 감식 등을 진행해 원인 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