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비대화는 자원 낭비·비효율 증가 초래
경제활성화 정책은 시장·자유에 기초해야
김경준 CEO스코어 대표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트렌드로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경제적 가치 배분 관점의 접근이 부각되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ESG 평가 기준 가운데 우리나라 기업 다수가 수용하는 GRI(Global Report Initiative)가 있다. GRI는 지속가능경영 국제 보고 기준이다. CEO스코어는 GRI를 적용해 2021년 3분기를 기준으로 조사 가능한 국내 207개 대기업의 경제적 가치 창출 및 배분액을 산정했다. 9개월 동안 974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고 배분했으며 기업별로는 삼성전자 118조원, 현대자동차·기아 101조원의 순이었다. 업종별로는 정보기술(IT)·전기전자 218조원, 자동차부품 161조원, 석유화학 159조원으로 3개 중추산업이 전체의 55%를 차지했다.
이해관계자별 배분액은 협력사 대금 790조원(81%), 임직원 급여 124조원(13%), 정부 38조원(4%), 주주배당 10조원(1%), 채권자 이자 11조원(1%)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정부에 대한 조세공과금의 급증이다. 2020년 대비 증가율이 협력사 16%, 임직원 7%, 주주 23%, 채권자 12%인데 정부는 무려 80%나 늘어났다. 정부 배분액 증가율은 경제적 가치 전체 증가율 16%의 다섯 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우리나라 경제활동의 가치 배분 구조에서 정부 부문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중국에서 공산당과 연결된 국유기업이 약진하고 시장경제 영역의 민간 기업이 위축되는 퇴행적 현상에 빗대어 우리나라에서도 자조적으로 언급되는 한국판 ‘K-국진민퇴(國進民退)’의 추세가 확인된 셈이다.
경제적 가치 배분에서 정부 부문의 대폭 증가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먼저 2020년 초반에 발생한 코로나로 야기된 위기 상황을 민간의 기업, 협력사, 임직원이 합심해 극복한 성과를 정부가 과도하게 향유하는 측면이다. 실제로 코로나를 빌미로 국가예산과 공공부문은 급속도로 팽창했고 어려운 시기에 기업과 개인들이 힘들여 납부한 세금을 흥청망청 사용하는 사례가 빈발한다. 일상생활에서 소셜미디어(SNS)를 도배하는 정부와 공공기관 홍보물이 대표적 사례이다. 홍수를 이루는 동영상과 게시물 대부분은 국민 입장에서는 접하지 않아도 무방한 내용이다. 음악과 율동 등 외양은 세련됐지만 어차피 메시지는 상투적이고 진부하다. 또한 연말을 맞아 정부기관이 배정된 예산을 소진한 산하기관에 포상금까지 지급한다는 희극적 비극이 언론에까지 보도되는 행태가 이를 대변한다.
나아가 이런 단편적 현상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공공 비대화에 따른 사회 전반적인 자원 낭비와 비효율이 증가하는 추세의 고착화다. 정부 등 공공부문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않고 사후적 배분에만 참여하는 소비자다. 시장경제에서 기업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배분하는 주연이고, 정부는 조세 형태로 자원을 수취해 소비하는 조연이다. 조연인 정부가 주연인 기업을 압도하면 시장은 약화되고 역동성은 떨어진다.
지난해 12월 15일자 한국경제신문에는 한경밀레니엄포럼 참석자들이 2022년 스크루플레이션(screw+inflation)을 우려하는 내용이 소개됐다. 쥐어짜기를 의미하는 스크루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물가는 상승하고 임금은 제자리에 머무는 가운데 세금이 늘어나 가계의 살림살이가 나빠지는 경제 현상을 의미한다. 이번 경제적 가치 배분에서 나타난 정부 부문 비중의 대폭 증가는 예고되는 스크루플레이션 현상을 기업 측면에서도 확인한 셈이다.
신년에 선거철을 맞아 만병통치약식의 경제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제의 기본인 시장과 자유에 기반하지 않는 정책은 상호모순적인 선동적 구호에 불과하다. 경제활성화 정책은 ‘퇴행적 국진민퇴’가 아니라 ‘미래향 민진국퇴’가 근본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