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본점 /사진=연합뉴스
롯데백화점 본점 /사진=연합뉴스
“외부에서 리더가 영입되면 내부의 모두가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문화가 바뀔 때의 느낌이다”. 벤 호로위츠가 『최강의 조직』에서 한 말이다. 조직 문화야말로 비즈니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요체임을 그는 이 문장에 집약했다. 요즘의 롯데쇼핑 임직원만큼 호로위츠의 격언을 폐부 깊숙히 느낄 조직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유통 부문을 총괄하는 자리에 P&G 출신의 김상현 부회장이 선임되고, 쇼핑 사업부의 주축인 롯데백화점엔 ‘신세계맨’인 정준호 신임 대표가 취임했다. 롯데쇼핑 내부에선 “적자(嫡子)를 버렸다”는 우려와 “변화를 위한 적임자”라는 기대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1979년 출범한 롯데백화점, 43년만의 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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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사진)가 7일 저녁 대대적인 조직 개편안을 내놨다. 롯데쇼핑의 ‘1등 DNA’에 ‘유연하고(agile), 선제적(being proactive)이며, 창의적(creative)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디자인(design is everything and everywhere)’하는 조직 문화를 결합시키는 것이 골자다. 다시 말해, ‘롯데 문화’의 환골탈태다. 이를 위해 현 임원 정원(42명) 중 상당수를 외부 전문가로 채우기로 했다. 여성 임원은 16명으로 기존의 두 배로 늘린다. 정 대표는 “이번의 대대적인 조직 개편은 일하는 방식, 소통하는 방식을 개선해 롯데백화점이 다시 업계 1위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달라질 조직 문화가 어떨 것인 지를 몸소 보여줬다. 어떤 과정을 거쳐 이번 결정이 내려졌으며, 왜 조직 개편을 하는 것인 지에 관한 동영상을 제작, 7일 저녁 모든 임직원들이 볼 수 있도록 올렸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8일 “지금까지 조직 개편 및 인사는 사내 게시판에 결과만 통보하는 식이었다”며 “직원들과의 공유와 소통을 통해 새로운 조직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동영상에서 정 대표는 “HR과 기획이 주축이 돼서 여러 임원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한 롯데 역사에서 처음 있는 조직 개편”이라 말했다.

정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동영상 소통’에 나섰다. 지난달 20일 처음 올린 동영상에선 “영화배우 정준호씨보다 (롯데백화점에서) 더 유명해진 정준호”라고 자신을 소개한 정 대표는 시종일관 조직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직 문화는 숨쉬는 공기와 같다”는 지론을 펼친 그는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런 의견들이 모아져 최종 결정이 내려지는 조직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가 최악”이라고도 했다. “정치적으로 행동하며 후배들한테 존경받지 못하는 리더, 점포를 쥐어짜는 본사의 갑질, 지시만 하고 스스로는 하지 않는 팀장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동영상엔 1100여 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뜨거운 호응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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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브랜드를 수입하는 조직인 롯데GFR 대표로 2020년 취임한 정 대표는 ‘외부인’으로서 롯데의 문화를 주의 깊게 ‘관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롯데인의 시각’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배경이다. 정 대표는 “‘본점’이라는 표현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고 임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9년 1호 롯데백화점으로 출범한 소공동 본점이 롯데 사사(社史)에선 의미가 있을 지 모르지만, 백화점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강남 대전’에 화력을 집중해야한다는 의미다. 정 대표는 지난달 20일 첫번째 동영상에서 “소공동 본점의 전관 리뉴얼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것”이라며 “동시에 신세계 강남점을 능가할 수 있는 롯데백화점의 1등 강남 점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잠실점과 강남점을 경쟁사가 따라오지 못할 고급스러움과 세련되고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 1등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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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문화 개선과 함께 정 대표는 롯데백화점의 조직 체계에서도 파격적인 변화를 단행했다. 3개(수도권 1,2 본부와 영호남본부)로 나뉘어져 있던 지역별 관리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 대표는 “지난 3년 간 롯데백화점은 3명의 지역부문이 각자 독립된 형태로 운영됐다”며 “하나로 뭉쳐진 힘이 아니라 3개로 나뉘어져 있다보니 브랜드와의 협상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었고, 새로운 MD 컨텐츠를 개발하는데 있어서도 속도가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통합된 하나의 본부가 전 점포를 전략적으로 관리할 것”이라며 “백화점과 아울렛 사업부도 분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백화점은 하나로 통합하되, 업(業)의 성격이 다른 아울렛을 별도 본부로 떼어내 MD전략 수립, 브랜드 유치, 마케팅, 디자인 등에서 각 채널별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백화점과 아울렛 등 두 본부 간 연결은 기획관리본부가 맡기로 했다.

국내 정상급 ‘브랜드 헌터’인 정 대표는 상품본부를 개편하는데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전문가 조직으로의 변신이 골자다. 특히 식품부문(신선식품, F&B 등)을 상품본부에서 분리해 대표 직속으로 두기로 했다는 게 가장 주목받을만한 변화다. 신세계 출신인 정 대표는 신세계 강남점의 성공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봤다. 고속터미널 옆에 있는 강남점은 신세계가 롯데백화점의 아성을 뚫지 못하며 고전하던 시절 신세계 품에 들어왔다. 이명희 회장은 ‘롯데 타도’를 목표로 삼성물산 소유였던 부지에 최고급 백화점을 완성해 연 매출 2조원이 넘는 국내 1등 점포로 만들었다. 이 회장과 정유경 신세계그룹 총괄사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식품 구성으로 ‘강남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모객 효과를 극대화한 게 강남점 성공의 비결이라는 건 백화점 업계의 정설이다.

상품본부에 속하는 상품 카테고리는 전문 분야별로 세분화하기로 했다. 1개 부문으로 통합돼 있던 해외 명품을 3개 부문으로 나누는 식이다. 남성 스포츠 부문도 남성패션, 스포츠, 아동 등으로 잘개 쪼개진다. 정 대표는 “그간 롯데백화점은 2~3년에 한 번씩 순환 근무를 하면서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를 만드는데 급급했다”며 “앞으로는 늘어난 부문장 자리에 S급 인재를 발탁함으로써 전문가(specialist)를 적극 양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정 대표는 “상반기 중 롯데그룹의 다른 계열사를 포함해 외부에서 전문가를 대거 영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백화점의 임원 정원은 42명이다. 하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32명의 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10명을 충원함으로써 외부에서 전문가를 대거 영입할 수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전략이다.

하나의 결정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친 방대한 일련의 행동을 통해 저절로 만들어지는 규범이 바로 조직의 문화다. “올해는 롯데백화점 혁신의 원년”이라고 선언한 ‘정준호의 파격’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