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석 조도 체크까지…깐깐한 이부진의 호텔 경영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신라호텔은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특급호텔이다. 일등공신은 이부진 대표다. 2010년 그의 취임 이전과 이후로 호텔신라의 ‘퀄러티’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와 관련해 대리석 조도에 얽힌 이 대표의 일화 하나. 취임 후 얼마 안된 어느날, 이 대표로부터 호텔 로비 바닥의 대리석 조도를 체크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임직원들도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대리석 조도 체크까지…깐깐한 이부진의 호텔 경영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산업안전대사전에 따르면 조도(照度)란 ‘어떤 면에 투사(投射)되는 광속을 면의 면적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 국어사전은 ‘단위 면적이 단위 시간에 받는 빛의 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정의대로라면 빛을 받는 면적에 광원이 얼마나 떨어져 있으며, 빛의 세기가 어느 정도인가가 조도를 결정한다. 그런데 대리석은 품질과 관리 수준에 따라 같은 광원이라도 빛을 내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신라호텔이 값싼 대리석을 썼을 리는 만무하고, 이부진 대표는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를 물었던 것이다.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장충동 호텔신라를 방문하는 이들은 로비 천장에 달린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에 넋을 잃지만 좀 더 세밀하게 호텔의 수준을 관찰하는 이들은 바닥의 대리석이 샹들리에의 빛을 받아 얼마나 빛을 내는 지를 살핀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호텔로 손꼽히는 포시즌스호텔도 세계 각국에 진출할 때 ‘퀄러티 체크’를 철저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체크 리스트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포시즌스호텔의 전문가들이 반드시 검증 대상으로 삼는 건 욕조라고 한다.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욕조에 물이 꽉 차는 속도와 물이 빠지는 속도 모두 체크한다”며 “그들이 정한 시간을 못 지키면 포시즌스라는 브랜드를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욕실은 특급호텔들이 가장 깐깐히 보는 호텔 시설이다. 샤워실 꼭지에서 나오는 수압의 세기도 각 특급호텔마다 규정이 따로 있을 정도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1970년대 프랑스 사회를 분석하면서 구별짓기라는 용어를 등장시켰다. 나와 타인, 내가 속한 집단과 여타 집단을 구별하기 위한 핵심은 취향이다. 그의 이론은 현대판 신분제가 작동하는 원리를 파헤치는 것이었는데, 사실 취향을 통한 구별짓기는 유럽 등 서양의 ‘문명’ 국가와 아시아, 아프리카 등 비서양 국가를 구분하는데에도 적용됐다. 영화 ‘아웃오브아프리카’에서 여주인공인 메릴스트립이 처음 등장한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녀는 옷에서부터 축음기 같은 문명의 취향들을 한 가득 안고 제국주의의 발이던 철도로 아프리카 땅을 밟는다.

특급호텔은 서양 문명이 만들어낸 취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이 소위 세계를 경영하던 제국주의 시절, 개척자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건 안락하게 쉴 수 있는 집같은 공간이었다. 그들은 낮에는 문명과 야만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다가도 ‘퇴근’ 후엔 사교 클럽에 모여 그들만의 취향을 즐겼다. 특급호텔은 수천마일을 수개월 동안 달려 온 출장자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었다.

홍콩의 유서깊은 호텔인 페닌슐라 호텔이 대표적이다. 애칭 ‘펜(The Pen)’으로 불리는 주룽 반도 맨 끝에 자리잡은 이 호텔은 바다를 끼고 지척에서 홍콩 섬을 마주하고 있는 세계적인 특급호텔이다. 1921년 홍콩 주재 스코틀랜드인 제인스 타거트의 발의로 건립해 1928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유럽의 전통적인 르네상스풍 디자인을 택한 H자 형태의 8층 호텔이 준공되자 호사가들은 ‘동서양을 가르는 기준점인 수에즈 동쪽에서 가장 멋지고 세련된 호텔’이라는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윤상인 저 호텔과 제국주의』참조)

메리어트, 하얏트, 포시즌스 등 미국계 거대 호텔 체인들이 1950년대 이후 전세계로 뻗어간 것도 철도와 대포가 항공기와 달러로 바뀌었을 뿐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를 구축하기 시작한 미국의 자본주의는 세계로 뻗어나갔다. 팬암 등 항공기가 전세계 항로를 질주했고, 공항에서 내린 출장자들은 미국에서 누렸던 취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특급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제조업 강국이자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이 유독 호텔업에서만큼은 글로벌 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랜 세월 축적된 문화 자본인 취향의 차이를 구현하지 못해서다. 모방을 하자니 영원히 아류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닛코호텔 등 일본의 호텔체인들이 해외로 진출했지만 서양의 대형 호텔 체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특급호텔의 지위는 차지하지 못했다.

‘이부진의 호텔신라’에 주목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을 비롯해 한국은 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오너가(家)의 자제들이 전세계를 오가며 축적한 문화적 자본은 어지간한 유럽과 미국의 부호 못지 않다. 호텔신라뿐만 아니라 정유경 신세계그룹 총괄사장이 지난해 처음 선보인 오노마 호텔도 세계로 뻗어나갈 유력 후보 중 하나다. 롯데호텔은 롯데가(家) 3세인 장선윤 전무와 함께 미국 등 선진 시장을 꾸준히 두드리고 있다. BTS가 해냈듯이 어쩌면 한국의 특급호텔들이 일본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낼 지, 누가알랴.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