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음악인류'
모리스 라벨의 춤곡 '볼레로'는 기승전결 구조에 따라 주제를 발전시키는 기존 문법에서 벗어나 같은 멜로디를 15분 넘게 반복하며 악기 편성만으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낸다.

인상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설명하기에 편한 곡이지만 피치 못할 사정도 있었던 것 같다.

미국의 음반 프로듀서이자 신경과학자인 대니얼 J. 레비틴은 라벨의 뇌손상이 이 곡의 탄생에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라벨은 뇌의 왼쪽 피질이 망가져 음고에 대한 감각을 일부 잃었지만 음색 감각은 남아있었고, 여기서 영감을 얻어 음색의 다양함에 무게를 둔 '볼레로'를 작곡했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 번역·출간된 레비틴의 책 '음악인류'(와이즈베리)는 인간이 어떻게 음악을 인식하고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를 뇌과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음악을 듣거나 연주할 때 뇌의 여러 부위가 역할을 분담한다.

음의 지각과 분석,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출 때의 촉각 반응, 발 구르기와 춤 같은 움직임 등이 각각 다른 부위에서 처리된다.

이미 알고 있는 곡이나 익숙한 양식의 음악이라면 기억 중추가 작동하고, 최종적으로는 정서 중추를 통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음악이 일상의 다른 소리와 달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음악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

작곡가와 연주자들은 청자의 기대감을 조작해 전율이나 오싹함·슬픔 등의 정서를 채워 넣는다.

클래식 음악의 허위종지, 느닷없이 연주를 멈췄다가 재개하는 록 음악의 전개 따위가 대표적인 예다.

그루브의 박자 감각 위반을 인간의 뇌는 쾌락과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

저자는 "기대감 설정과 조작은 음악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현대음악은 기대감이라는 개념을 아예 내던져버렸기 때문에 청자는 표류하는 환상에 빠진다.

그래서 꿈이나 무중력 상태를 그린 영화에 잘 어울린다.

저자는 왜 때때로 어떤 곡이 머릿속을 맴도는지, 음악을 들을 때 과거 경험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인지, 대부분 사람의 음악 취향이 왜 10대 후반에 완성되는지 등 궁금하지만 답이 없을 것 같았던 질문들에도 뇌과학 연구 결과를 적용해 나름의 설명을 내놓는다.

이진선 옮김. 388쪽. 2만2천원.


/연합뉴스